• 2차대전 끝 무렵인 1944년 말 미 육군 C-47 화물기가 기상 악화로 뉴기니 도부두라섬에 추락했다. 육군비행단 사스코 대위와 커닝햄 상병이 타고 있었다. 호주 공군이 수색에 나섰으나 흔적을 찾지 못해 실종자로 처리됐다. 미국방부 발굴팀은 1979년 추락지점을 추적해냈고 밀림을 이 잡듯 뒤져 2004년 사스코 대위, 2006년 커닝햄 상병의 유해를 찾아냈다. 62년 만의 귀환이었다.

    ▶미 국방부 실종자발굴팀은 2006년 베트남 쟈라이성 마을에 미군 조종사가 묻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민들이 쓴 묘지엔 유해는 대부분 스러졌고 군번표만 남아 있었다. 1966년 퀴논 공군기지에서 세스나 정찰기를 타고 출격한 뒤 실종됐던 앤드루스 소령이었다. 전사자로 분류돼 1978년 시신 없이 알링턴국립묘지에 모셔진 상태였다. 유족은 유해를 끝까지 찾아준 정부에 감복했다.

     ▶1991년 1월 17일 걸프전 첫날 추락한 미군 전투기 조종사의 유해가 18년 만인 며칠 전 발굴됐다. 걸프전의 유일한 실종자로 남아 있던 스파이커 해군 소령이다. 전투기를 몰다 격추된 그는 그동안 낙하산을 타고 탈출했다거나 감옥에 있다거나 하는 소문만 무성해 '사망'→'실종'→'실종 또는 포로'로 분류가 바뀌어왔다. 미군은 2003년 이라크를 점령한 뒤 바그다드 인근 묘지를 발굴하고 50곳의 병원과 감옥을 수색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이라크인의 제보로 베두인족이 사막에 묻었던 유해를 발견했다.

    ▶스파이커 소령의 생존 여부 확인은 미 육군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사령부(JPAC)'의 최대 과제였다. 사령부는 2차대전(7만8000명)·한국전(8100명)·베트남전(1900명) 실종자를 찾기 위해 10~14명씩 짜인 18개 팀을 세계 곳곳에 내보낸다. 법의학·문화인류학자 30명, 법치의(法齒醫)학자 4명이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파악한다. '단 한명의 군인도 홀로 적진에 남지 않게 하라'는 게 이들의 모토다.

    ▶우리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2007년 발족해 지금까지 국군 3143구 등 3856구를 발굴하고 55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국군 32만명이 참전했던 베트남전 때도 우리 전사자 유해를 베트남 사람들이 공동묘지 등에 묻은 곳이 많다고 한다. 참전용사들이 파악한 매장지도 여럿이지만 현지 발굴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서울현충원의 유해발굴감식단 청사 휘호석엔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라크전 마지막 실종자까지 기어코 찾아내는 미국에 감탄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