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 뉴데일리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 뉴데일리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라는 정부산하의 단체가 있습니다. 거액의 예산을 배정받아 과거 정권하에서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일도 하겠지만 주로 하는 일이 70년 가까운 옛날에 일어난 일들, 그 보다 40년 전에 친일하였다고 믿어지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언동을 들추어내 정죄하는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누구를 친일파 명단에 올리느냐 하는 것은 역사가의 몫이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할 일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같은 시기에 일본군대에서 같이 근무한 두 일본장교 중에서 박정희 장군은 빼고 백선엽 장군은 명단에 올려 부끄럽게 만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5성장군의 물망에 오른 백선엽 장군과 그를 군인의 귀감으로 믿고 있는 수많은 장병들과 그를 존경하는 국민이 가만있겠습니까.

    <월간조선> 금년 3월 호에 신동아 그룹 회장이던 최순영 씨가 10년 만에 털어놓은 신동아 그룹 공중분해의 내막이 자세하게 실려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하자면 “그들은 굶주린 이리 떼처럼 달려들어 20조원짜리 회사를 뜯어먹었다”는 표지의 타이틀이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들이”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인가. 그들은 “DJ정권 실세”라고 토를 달았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면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생사람 잡아다 가두고, “DJ정권의 실세”라는 자들이 달려들어 뜯어먹고 갈라먹고, 대를 이어 이룩한 대기업 하나를 삼키고 말았을 뿐 아니라 주인은 홀랑 벗겨 눈보라치는 허허벌판에 내동댕이친 것입니다. 정권이 잘 돼가는 기업 하나를 하수인을 시켜 결단을 내놓고,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10년의 긴 세월 동안 끽소리도 못하게 하였으니,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도 2년 가까이 지났는데 이 사실의 진상을 규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천인공노할 악행이라고 느꼈습니다.

    공자님 말씀에도 “옳은 일을 보고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10년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으니 법적으로도 조사할 근거가 없다고 하는 것은 그 “실세들”의 궤변일 수는 있어도 결코 선량한 일반 국민의 의견일 수는 없습니다. 이 협잡·악행에 관여한 “실세들”의 “양심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필귀정”의 수순이 간편해질 것입니다. 히틀러의 졸도들이 유태인을 학살한 만행에 무슨 공소시효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 잘못된 두 정권하에서 최순영 회장이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앙앙불락의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 10년을 공소시효기간으로 잡을 수는 없는 일이죠.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불편부당한 사실 심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입니다. 잘못된 일은 속히 바로잡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