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하나. 세계적 경기 침체 와중에도 고속성장을 질주하는 산업이 있다면? 정답은 태양광, 연료전지 같은 그린(green·신재생)에너지의 일종인 풍력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세계 풍력발전설비 시장 규모(누적 발전량 기준)는 120기가와트(GW)로 10년 전보다 860% 늘었다. 1997년 1.5GW이던 연간 신규 발전설비 용량은 지난해 27GW로 연평균 30%씩 성장했다.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1GW 이상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주(州)는 7개이다. 텍사스주의 경우, 작년에만 2.67GW 규모의 풍력발전 설비를 새로 설치했다. 이는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의 풍력발전 누적 총용량(236MW)보다 11배나 많은 것이다. 풍력발전 건설에 100억달러(약 13조원) 투자를 선언한 석유재벌 T 분 피킨스(Pickens)를 비롯해 GE, 로열 더치 셸 등이 텍사스주에만 16개의 초대형 풍력 단지를 짓고 있다.

    미 텍사스서만 2.67GW 발전량 신설, 한국 총누적량11배

    현재 풍력발전은 미국에서 그린에너지가 생산하는 전력량의 42%를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그린 선봉장'이다. 하지만 미래는 더 창창(蒼蒼)하다. 오바마(Obama) 행정부가 전력 총생산량의 1.25%인 풍력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늘리겠다고 확정했기 때문이다.

    풍력산업에 목숨 건 나라는 더 있다. 2006년부터 3년 연속 풍력발전 신규 설비 규모가 연평균 200%씩 급증하는 중국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12GW 수준인 풍력발전량을 내년에 30GW, 2020년에 150GW로 늘린다는 대담한 청사진을 내놓았다. '꿈'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풍력 발전 터빈 분야에서 중국 1, 2위 기업인 골드윈드(金風科技·7위)와 시노벨(10위)은 지난해 세계 10위권에 진입했고 영국·일본 시장에도 진출했다. 중국 토종 풍력 터빈 제조 기업은 100개, 설비 제조사는 70개가 넘는다. 골드윈드측은 "2012년까지 제작 주문물량이 이미 다 찼다"며 "올해 순이익은 작년보다 50% 정도 늘어난 100억위안(약 1조8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2004년 25%에 그쳤던 중국 업체들의 자국 풍력시장 점유율은 2007년에 56%로 치솟았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풍력발전시스템 등에 엄격한 국산화율을 지정해 자국 기업의 기술 고도화와 몸집 키우기를 적극 지원하는 게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라면 중국 업체들이 세계 풍력시장을 장악하는 '거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각국이 이처럼 경쟁적으로 '풍력발전 레이스'를 펼치는 것은, 완전 무공해 산업으로 발전 단가가 태양광의 20%에 불과하고 부가가치와 고용창출 효과는 그보다 큰 풍력산업의 '매력' 때문이다. 풍력산업은 내년도 세계 시장 규모가 596억달러(약 77조원)에 달해 잘만 하면 황금알을 낳는 수출 품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5월말 우리 정부가 확정발표한 '신성장동력' 명단에 풍력은 빠져 있다. 풍력 산업 인허가를 받으려면 11개 부처에서 12단계를 통과해야 할 정도로 규제 장벽도 높다.

    한 업체 관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중공업 업체들을 가진 우리나라는 풍력 산업 성공 가능성이 어느 나라보다 높은데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독자 기술개발 업체에 대한 추가 세액공제, 국산부품 활용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풍력 산업 인허가 대폭 간소화 같은 개선방안조차 지지부진하다.

    세계 각국은 풍력발전 시장 선점(先占)을 향해 정부와 기업이 하나가 돼 한창 뛰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구호만 요란한 채 '낙오자'가 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