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청수·국제홍보협회 한국회장 ⓒ 뉴데일리
    ▲ 이청수·국제홍보협회 한국회장 ⓒ 뉴데일리

    비정규직 고용 시한(6월 30일)이 대책 없이 넘어감에 따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없는 한 대량 실업사태가 불가피하게 됐다. 국회가 그 입법 대책을 시한 내에 도출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대책이다.

    물론 최상의 대책은 이들이 모두 정규직화되는 것이지만 우리 경제 형편상 당장 실현 가능성이 아주 낮다. 차선의 방법으로는 여야가 다시 협상을 벌여 해법을 내놓는 것이지만 이른 시일 내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제3의 방법으로 대통령의 재정·경제에 관한 긴급명령권을 발동해서 우선 최악의 사태를 예방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 이 절박한 시점에서 국회나 여야나 노조 탓만 하고 있을 수 없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무슨 비상조치를 취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제3공화국시대의 초헌법적 국회 해산이나 유신시대의 긴급조치와 같은 것으로 할 수는 없다. 현행 민주 헌법의 제76조 1항에 명백히 규정돼 있는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의 발동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조항에는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 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경우 여기서 다른 것은 모두 요건이 충분하다. 단 한 가지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의 규정에 해당될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은 국회가 짝수 월인 6월에 열리도록 돼 있어서 여권 중심이긴 해도 지난달 26일에 이미 소집돼 있는 상태다. 그러나 비정규직법 등을 둘러싼 여야 대립과 노조의 반발, 일부 야당 의원들의 농성으로 국회의 회의를 정상적으로 열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회가 소집은 됐어도 회의는 제대로 열지 못하는 식물국회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국회가 사실상의 폐회나 휴회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헌법학계에서도 부정설과 긍정설이 나뉘어 있다. 부정설은 국회가 일단 소집된 상태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그런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긍정설은 국회가 소집은 됐다 하더라도 적어도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한 식물국회와 같아 어떤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일단 긍정설에 따라 조치를 취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다. 이때 대통령은 부정설에 입각한 헌법 위반행위라는 이유의 탄핵 소추 공세를 우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긴급명령이 위헌 위법이고 부당하다면 헌법 제76조 3항과 4항에 따른 국회의 사후 승인을 얻지 못해 실효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헌법재판소에 제소돼서 위헌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비정규직을 일단 긴급 구제하고 경제와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그런 어려움도 감내하고 뚫고 나가겠다는 정치적 패기를 보여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시간 여유를 다시 갖고 대화로 풀어나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유신체제 때의 긴급조치(9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정당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은 93년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에 관한 것을 비롯해서 우리 헌정 사상 모두 16건이 있었다.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다만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문제가 되지만 이것을 '국회의 회의를 기다릴 여유가 없는' 때에도 적용하는 긍정설에 입각하면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다.
    <7월3일자 조선일보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