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평중 한신대 교수. ⓒ 뉴데일리
    ▲ 윤평중 한신대 교수. ⓒ 뉴데일리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정책자문단과의 만남에서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나는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하는데 잘 안 받아들여진다"며 자신을 "좌우가 모두 오해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많이 폈는데 부자정권으로 여겨지는 데 대한 답답함도 피력했다고 한다.

    여기서 '진정성'이란 매우 의미심장한 용어다. 이는 2005년 7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인 한나라당에 '정권의 반까지 넘겨줄 수 있다'며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인구에 회자된 말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이 제의를 거부하자 그는 한국사회 최대 문제인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자신의 진정성을 곡해한다며 개탄한 바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종종 이 표현을 쓴다. 양심을 걸고 진솔하게 하소연하거나 진실에 입각해 자기 확신을 강조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진심을 담아 어떤 말을 했는데 진정성을 몰라준 상대방이 차가운 반응을 보일 때 우리는 실망하거나 좌절한다. 결국 진정성은 나의 주관적 진실성을 가리키는 세련된 표현일 터이다. 거짓과 모략, 영악함과 노회함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정성은 드문 미덕이다. 얼굴에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마련인 사회생활에서 맨얼굴을 보이는 사람의 존재는 신선한 충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성이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나는 한국사회의 큰 폐단 가운데 하나가 주관적 진실성과 양심을 앞세워 공적인 일을 주관의 논리 아래 종속시키는 데 있다고 본다. 진정성(眞情性)은 정(情)이라는 구성 요소가 드러내듯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맥락을 지칭한다. 그러나 공공의 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주관적 진실성만으로 풀 수는 없다. 공적 지평은 관점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다수의 타인과, 인간의 바깥에 완강히 버티고 선 객관적 세계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정치와 역사는 타인과 세계가 결부된 대표적 공공 영역이다. 따라서 진정성이 아무리 고상하고 절박한 것이더라도 공적 지평에서는 마땅히 그것의 사실성과 합리성을 검증해야 한다. 깊은 내면의 진실에서 나왔다고 해도 정치와 역사에 대한 말과 행동은 공적 무대에서 그 정당성과 현실적합성이 객관적으로 토의되고 증명되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나의 진실과 너의 진실이 충돌할 때 각자의 주관적 진정성에만 집착하면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도롱뇽을 지킨다며 단식투쟁한 스님의 진정성은 경부고속철 사업을 지연시켜 천문학적 예산 손실을 가져왔다. 자신의 양심에 따른 행동이었지만 생태운동을 실질적으로 진작시키지 못한 채 서민의 혈세만 축내고 말았다. 평화적 축제의 형태로 진행된 '2008년 촛불'의 장관(壯觀)도 참여한 시민들 입장에서는 진정성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의 인간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공포가 공적인 사실과 합리성의 기준에 위배된 것으로 판명됐을 때 그 진정성은 허망해진다.

    백범 김구의 남북협상론은 진정성으로 가득 찬 역사적 결단이었다. 하나 스탈린이 이미 1945년 9월 20일에 북한 단독정권 수립을 지령하고 미국 또한 남한에 대한 후견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던 당대 동북아 냉전구도에서 '남북 상호의 양보로써 건설될 통일체'의 꿈은 현실적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한민족의 공존공영을 지향한 햇볕정책의 진정성도 눈부신 바 있다. 그러나 핵무장 자체를 체제보위의 마지노선으로 삼아 대남 협박을 일삼는, 북핵과 관련된 '진실의 순간'이 펼쳐지는 순간 남북통합과 화해의 진정성은 신기루가 된다.

    이는 진정성이 정치행위의 잣대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와 역사의 지평에서 정말 중요한 건 행위자의 선한 의도가 아니다. 정치인을 포함한 공적 인간의 핵심적 의무는 자신이 놓여 있는 시대상황과 객관적 조건을 냉철하게 살핀 토대 위에 시민의 지지와 세력을 모아 목표를 이루는 책임윤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진정성의 가치를 가장 선명하게 내건 정치인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점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일정한 성과를 기록한 참여정부지만 객관적 정황을 무시한 채 주관적 의지를 앞세워 좌충우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남이 나의 진정성을 몰라준다며 푸념하는 건 프로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그럴듯한 수사(修辭)보다 중요한 것은 서민경제를 살리고 민주주의를 지키며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을 감싸 안는 정책의 실천이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서민친화적인 중도실용정책을 실행한다면 굳이 선전하지 않아도 시민들이 대통령의 진정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공허한 허상일 뿐이다.<조선일보 6월29일자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