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 조선닷컴
    ▲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 조선닷컴

    "공산주의자들에게 단순한 공갈은 통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은 우리가 막강한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실제로 고려하고 있음을 그들이 인식하게 될 때라야 성공할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휴전 협상의 유엔군측 수석대표였던 터너 조이(C.Turner Joy) 미 해군중장이 공산측과의 협상 경험을 토대로 쓴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협상하는가'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그는 1955년 출간된 이 책에서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전쟁을 회피하려 한다면 전쟁의 위험을 감수할 태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경미한 사안에 관해 우리가 일방적인 양보를 하면 그들은 보다 중요한 사안에 관해서도 밀어붙이면 우리가 결국 양보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조이 제독이 50여년 전 설파(說破)한 이 말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계속돼 온 북한의 도전과 도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이후 지루하게 끌어오다 최근 다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북한과의 핵협상과 관련해 되새겨볼 만하다.

    북한은 그동안 '전쟁 불사'를 외치는 벼랑 끝 전술과 흥정 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야금야금 실속을 챙기는 '살라미' 전술을 적절히 배합해 가며 한·미 양국 등으로부터 많은 실리를 취해왔다.

    올 들어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로 활용될 수 있는 장거리 로켓 발사, 2차 핵실험 등을 한 데 이어 지난 13일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맞서 우라늄 농축작업 등을 공언하고 나섰다. 북한은 이미 6~8개가량의 20kt(킬로톤·TNT폭약 1000t의 위력)급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고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보유가 현실화하고 있다. 그만큼 남북 간 전력(戰力) 불균형, 유사시 북한의 핵 사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러면 이런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기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요원한 얘기다. 차선책으로는 북한이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억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를 위해선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의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핵우산이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며 실제로 핵무기가 사용될 수 있다는 의지를 북한에 분명히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이 미국의 핵우산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핵우산을 통한 핵 억제는 효과가 없는 것이다. 북한에 핵우산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는 방법과 관련, 1980년대 유럽에서의 중거리 핵전력(INF) 협상이 참고 사례로 제시되기도 한다. 당시 구소련이 SS-20 미사일을 서유럽을 겨냥해 배치하자 미국은 국내외의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퍼싱-Ⅱ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했다. 결국 구소련은 SS-20 미사일을 후방으로 물렸고 이에 부응해 서방세계도 퍼싱-Ⅱ 미사일을 후방으로 재배치했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1991년 한반도에서 철수한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미 양국 정부도 이런 우려를 감안해 16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우산과 재래식 전력을 포괄하는 '확장된 억지'를 명문화하였다. 하지만 북한에 보다 분명히 양국의 의지를 전하기 위해선 양국 군의 작전계획상 핵 응징보복 계획 포함 등 구체적인 후속 조치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