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20대 젊은 논객이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 황진태씨가 ‘변희재를 탓하는 당신도 듣보잡이 될 수 있다’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하여간 나는 여러차례 강조했지만, 극좌를 하든 극우를 하든 어쨌든 젊은 논객들이 하루라도 빨리 급부상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서, 웬만한 글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글의 내용은 진보좌파 젊은 논객이 먹고 사는 고민을 담고 있다. 이 고민에 대해서 나도 전적으로 동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논거로 나를 든 것은 이상하다.

    변희재가 생계가 어려워 사상을 전향했다?

    “변희재 본인에게 직접 물어 보아야 할 질문이겠지만 변희재의 '감각적 활동'을 통해 얻은 수많은 완장들은 역으로 그 많은 완장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도 된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깨놓고 말해서 진중권과 같은 예외적인 스타 논객을 제외하고는 이 바닥에 있는 글쟁이들은 생계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평소 진보진영이 대안이 없다고 쉽게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과 함께 진보진영에서 정책을 구상하고, 대안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했는가에 대해서 필자는 시민사회 차원에서 그러한 고민이 매우 부족했었다고 생각한다.

    변희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감각적 활동'을 추구했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지만 내 생각에 그가 했던 매체 중에 어느 하나라도 수익 창출을 이끌어 냈다면 그 정도의 초월적 행보는 보이지 않았을 거라고 예측한다. 변희재와 같은 사회의제에 포괄적이면서 의제 포착 능력이 뛰어난 논객들이 활동할 수 있는 안정적인 매체가 있고, 사회의 중요한 이슈별로 전문분야를 전공한 소장학자들에 대한 안정적인 연구 공간이 마련된다면 진보 진영의 정책 역량은 상당히 강화될 것이다. 언제까지 진보매체들도 예외적 천재인 진중권의 '입' 하나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혀를 끌끌 찰 정도의 한심한 내용이지만, 일단 그의 결론부터 보자.

    “대표적인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의 사정이 녹록치 않은 지경이 되었다. 박원순 변호사라는 시민운동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개인 후원이 2000여 명에 불과하다니 나머지 민간연구소 사정은 말할 것도 없겠다. 희망제작소는 설립 초기에 삼성으로부터의 후원을 받느냐 마느냐로 논쟁을 치른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비판과 더불어 이 연구소가 재벌의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운영이 가능하도록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 의외로 해답은 간단하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10명의 회원이 1명의 연구원을 책임진다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운영방식을 상기한다면 결국 국가, 재벌 등의 지배 세력들로부터 독립적인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돈으로 연구소의 물적 토대를 만드는 모순에서 벗어나서 자립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필자가 너무 구질구질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냈는가?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서 진보진영은 대안이 없다는 비판은 비판이기보다는 비난에 가깝다“

    즉, 황진태의 주장은 변희재가 생계가 어려워 사상을 전향했으나, 진보좌파 진영 젊은 논객들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무수한 변절자가 양산된다는 주장이다.

    세 가지 과제, 실천할 자신없으면 논객 생활 접어라

    황진태에게 내가 직접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테니,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따라 실천할 수 있는지 자문자답해보고, 개중 단 한 가지라도 실천할 자신이 없으면 일찌감치 논객 생활 접고, 다른 생업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첫째, 지금 위와 같은 글을 쓰지 마라. 논객은 함부로 추측해서 글을 쓰면 안 된다. 네티즌의 잡글이 된다. 내가 생계 때문에 사상을 전향했다는 추측에 대해서, 내가 반론했을 때, 황진태는 재반론할 수 있는가. 추측을 하게 되면 당사자가 반론했을 때, 말문이 막히게 되고 그게 논객의 신뢰성과 생명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구태여 이 글에서 반론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나는 벌써 여러차례에 걸쳐서 내 사상과 방향에 대해 설명해놓았다. 그 글을 보고, 자신의 추측의 근거를 찾아보기 바란다.

    둘째, 논객으로서 매체나 연구소 같은 일정한 비용이 들어가는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면, 해당 분야의 최고 수준의 전문적 실력을 키워야 한다. 이 실력이 없으면 좌파를 우파를 하든 조직 운영 비용을 만들 수 없다.

    황진태는 운하 건설 반대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다보니 운하를 추진하는 쪽에서 스카웃제의가 왔다고 한다. 한번 물어보자. 황진태는 운하를 반대할 수 있는 가장 철저하고도 확실한 연구데이터를 제시할 자신이 있는가. 운하를 반대하는 수많은 386세대 이상의 경제학자나 생태학자들이 앞선에 있다. 이들이 전혀 모르는 새로운 운하반대 논거들을 제시할 자신이 있는가. 즉 황진태가 운하 전문가냐 이 말이다. 아마도 황진태는 운하를 반대하는 학자나 논객들의 실력 순위를 매길 때 100위 안에 못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그럼 못 먹고 사는 것이다.

    반대로 황진태가 운하를 찬성하는 쪽에 스카웃되어서 활동한다? 그것도 마찬가지이다. 운하를 찬성하는 경제학자나 건설 전문가들을 랭킹으로 매겼을 때 황진태는 100위 안에 들어올 수 있는가? 그에 대해 자신이 없으면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것이다.

    셋째, 황진태는 이미 진보좌파와 보수우파 양 측에 완전히 진영이 갖추어진 운하 찬반 논란이 아니라, 황진태만이 사회에 던질 수 있는 다른 아젠더를 갖고 있는가. 특히 이른바 패거리들로 뭉쳐서 이권을 챙겨가는 386세대는 아예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젊은 세대만의 아젠더가 하나라도 있는가. 역시 이것이 없다면 논객생활 포기하라.

    황진태가 이 세 가지를 오늘부터 실천할 수 없다면, 종합적으로 역시 논객 생활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단 황진태가 세 번째 나의 주문, 자신만의 사회적 아젠더를 오늘부터 개발하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내 경험을 들려주겠다.

    나는 현재 세 가지 분야에서만큼은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들 중 하나라 자신하고 있다.

    첫째, 포털 개혁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정책.

    둘째, 연예매니지먼트 사업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산업 개혁.

    셋째. 세대론을 중심으로 한 청년창업 지원 정책.

    논객으로서 먹고 살려면 목숨을 걸어라

    이 세 가지의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확보할 수 없다. 내가 이 분야에 학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수많은 사례들을 조사 및 분석하고 내가 직접 체험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정책을 풀어놓았다.

    포털 개혁은 2005년 1월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다. 직접 정책 법안을 만든 건이 2개이고, 거의 모든 인터넷 정책 입안에 참여해왔다. 대중문화산업 개혁 역시 2005년부터 연구작업 및 법안 작업에 참여했고, 이 법안에 대한 논의를 주도해왔다. 이는 아직 대중적인 사회적 아젠더가 되지 못했지만, 올 하반기에 정부와 여당이 정책 발표를 하면, 치열한 논쟁이 붙게 될 것이고, 당연히 이 논쟁도 내가 참여하게 될 것이다.

    청년창업 정책은 내가 이미 대학생 시절 창업을 해왔고, 여전히 창업을 하고 있으며, 청년기업가들의 협회, 실크로드CEO포럼을 중심으로 8가지 실질적인 청년창업정책 개발을 마쳐놓았다. 이건 연수로 따지면 10년차이다.

    지금 나의 활동은 인터넷 정책, 대중문화 정책, 청년창업 정책,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러한 전문성을 확보하면서 자유롭게 나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분야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며, 사단법인 등 비영리 단체 활동, 연구소 활동, 매체 활동, 기획사업 등 수많은 파생 응용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활동은 실질적으로 올해부터 시작했다. 즉 지금까지는 내적 기반을 조성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럼 이 과정은 어땠을까? 쉽게 말해 목숨 내걸어야 한다. 이 목숨이란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진짜 길거리에서 굶어죽을 각오하고 달려들어야 한다. 실제로 나는 이러한 일을 여러차례 겪었다. 그 과정에서 아직까지는 내가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미래는 알 수 없으니, 그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황진태가 생계가 어려워서 사상을 바꿨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황진태가 정책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차례 고재열 등 젊은 논객들을 비판했듯이, 오직 이들의 눈에는 386세대처럼 패거리 진영만 보이지, 정책이나 역사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수준의 눈으로 어떻게 논객생활을 하며, 하물며 글로 먹고 살겠다는 발상을 하냐는 게 나의 반론인 것이다.

    논객은 네티즌들, 심지어 언론의 기사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도도한 시대적 흐름을 간파해야 한다. 논객이 먹고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능력에 대해 사회가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나의 경험 상 최소 5년 이상 한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온갖 조롱과 비웃음 당하고 실제로 경제적으로 극심한 위협에 시달려도 흔들리지 말고 버텨야 한다. 이 능력이 없는 자들이 글을 쓰고 먹고 살겠다는 발상이 나로서는 공짜심리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 반민주 친노세력과 전면전 벌인 게 전향인가

    나는 노무현 정권의 초기 시절인 2003년 5월에 친노세력이 민주당을 분당했을 때부터,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해버렸다는 이유로 정권과 이른바 우파진영보다 더 살벌한 각을 세었다. 그 당시 진보좌파 진영의 지식인들이 정권에서 한 자리 해먹으려고 아우성쳐댈 때, 그 패거리에서 빠져나왔다. 더군다나 2005년부터는 노무현 정권이 비호하는 언론과 인터넷 최대 권력 포털과 싸움을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문화권력인 거대 연예매니지먼트 회사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법안을 제출하며 이쪽과도 싸워왔다.

    나의 정치적 기반이라면 이념이 아닌 진영으로 볼 때 진보좌파 진영이다. 노무현 정권은 물론 이들에 부역한 진보좌파 시민사회 진영과 정권 초기부터 결사적으로 싸웠다. 또한 나의 활동무대는 인터넷인데, 이쪽 최대 권력 포털과 싸웠다. 나의 주된 관심 영역인 대중문화에서는 역시 신권력 연예매니지먼트 회사와 싸왔다. 내가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이와 전혀 별도로, 한 사업체의 대표라는 자리는 늘 수익과 비용을 맞추기 위해 하루하루가 그냥 전쟁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겪어야했던 수많은 일들을 황진태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

    젊은 논객들이 제대로 인식해야할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잘났으니까, 너희들도 따라오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젊은 세대 모두가 이런 식의 삶을 살 수 없다. 일단 먼저 뛰어나간 사람으로서, 아직 내가 성공을 말할 단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최소한 내 후배들 만큼은 내가 겪은 일을 그대로 되풀이 하도록 방치하고 싶지 않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젊은 세대의 자유로운 사고와 활동을 저해하는 진영 패거리들을 다 무너뜨리겠다. 방향이 맞으면 극좌하고도 일할 수 있고, 극우하고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젊은 세대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빛이 날 수 있다.

    둘째, 나는 이른바 진중권을 비롯한 운동권 386들의 수많은 방해를 받아왔다. 그게 바로 듣보잡 논리이다. 아랫 세대는 윗세대의 잘못된 점을 비판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고, 윗 세대는 이 때문에 아랫 세대의 비판에 대해 최대한 시간을 내어 논의에 응해주어야 한다. 386세대가 이를 막아버린 게 바로 “너 같은 무명하고는 상대하지 않는다”는 듣보잡 논리이다. 내가 이들을 죽을 때까지 용서할 수 없다는 게 이 때문이다. 이들을 반드시 응징하고, 나 스스로는 그 어떤 무명논객이 문제제기해도, 최대한 성실하게 답을 하면서, “뜨기 위해서 남을 비판한다”라는 기득권 논리를 박살내겠다.

    셋째, 한국사회를 전문가들이 평가받는 사회로 변화시키는데 일조하겠다. 비전문가들이 판을 치면, 전문가보다는 정치와 정략에 뛰어난 운동권 386세대가 지배하게 된다. 전문가들의 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젊은 세대는 미래가 없다. 또한 바로 전문가들을 위한 사회는 학력이나 학위로 차별하지 않는다. 누가 더 현실적합한 대안을 내느냐만 따지면 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 스스로도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는 이른바 젊은 세대 중에서 매스컴에 조명을 받았다는 이유로 “당신들도 나처럼 해봐” 이런 자서전 같은 것 쓰는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다만, 황진태 같은 진지한 논객조차도, 나에 대해 “생계가 어려워 전향했다”이런 수준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는, 이 척박한 젊은 세대의 그릇된 인식, 이것만큼은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황진태의 건투를 진심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