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대 정경학부 교수. ⓒ 뉴데일리
    ▲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대 정경학부 교수. ⓒ 뉴데일리

    경제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예측을 불허하지만, 금융 쓰나미가 어느 정도 진정된 현재, 선진국의 관심은 일제히 저탄소 사회를 향해 쏠려 있다. 이미 '교토의정서' 이후의 체제에 대해 협상이 시작됐고, 11월 COP15(제15회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에서 나올 새로운 합의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도 2020년까지 온난화 가스를 2005년 대비 15% 삭감(1990년 대비 8% 감소)하기로 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산업계, 특히 중소기업들의 불만도 크지만, 그래도 경기 대책의 하나로 시행된 '에코 포인트' 제도(에너지 절약형 상품을 구매할 때 가격의 일정비율을 포인트로 환원하는 제도)로 가전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도 쾌주하면서 정책이 힘을 얻고 있다.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자동차 업계에서도 도요타가 가정에서도 충전 가능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V) 리스판매를 연내 개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상사들도 자동차의 전지에 필요한 리튬 자원확보를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녹색성장'을 선언한 한국은 어떤가. 국제사회가 볼 때 환경문제에 관한 한국의 자세는 '소극적이고 애매하다'는 한마디로 집약된다. 환경문제와 관련, 유럽에 비해 큰 부담을 지게 된 일본의 전철을 밟으려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동차 메이커의 명암은 한국 산업계에서도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대량 에너지 소비를 '신이 주신 선물'처럼 생각한 미국 자동차 회사는 결국 금융 쓰나미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자멸할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미국을 좇아 신흥국들이 에너지를 대량 소비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반면 엄격한 에너지 절약을 해야 했던 '에너지 빈국'의 자동차 회사는 개미 같은 기술 개발 노력으로 그럭저럭 쓰나미를 뚫고 살아남으려 하고 있다.

    신흥국시장을 선점한 한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일본이나 독일처럼 선진시장에 주력한 나라가 느끼는 절박감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이나 인도 등 거대 잠재시장을 가진 나라는 최종적으로는 자국의 기업을 육성하려 할 것이다. 한국이 이대로 애매한 자세를 보인다면 결국 한국은 환경기준이 점점 엄격해지는 선진국시장에서 살아남든지, 아니면 신흥국시장에서 현지 기업과 끝없는 가격경쟁을 벌여야 하는 어려운 국면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정치·외교적으로 저탄소 혁명에 대한 대응을 서둘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일·중'이라는 새로운 체제의 부상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안전보장 면에서는 '한·미·일', 또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한·중·일'의 틀을 중시했다. 후자와 관련, 한국 미디어에는 '일본과 중국은 절대로 서로에 굽히지 않기 때문에 가운데에 한국이 필요하다'는 식의 기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교토의정서'에 참가하지 않았던 미국이 오바마 정권에서는 참가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의 사이에서는 중국을 어떻게 끌어들일지가 초점이 돼 가고 있다. '미·일·중' 체제가 여러 가지 대화의 장으로서 부상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이 GM 파산의 상징으로 가솔린 대량 소비차인 '허머' 브랜드 인수를 표명한 데 대해, 중국 정부가 제동을 건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중국도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 이것을 전략 카드로서 미국과 일본에 사용하려고 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응이 애매하다면 '한·중·일'의 틀은 '미·일·중' 체제에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IT혁명에서 선두에 나섰듯이, 한국 산업계에는 녹색혁명에서도 선두에 설 수 있는 기초와 협상력이 충분히 갖춰져 있으며 전 세계가 한국의 적극적인 자세를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관(官)과 민(民)이 함께 새롭게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조선일보 6월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