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를 치르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매월당(梅月堂 金時習) 후손이라는 분이 노 전 대통령 유서 내용 가운데 매월당 시(詩) 일부분을 도용(?)했다며, 결국 자신의 조상을 욕되게 했다고 흥분했다. 즉 노 전 대통령의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구절을 지적했다.

    매월당의 시는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体本無實) / 생사거래역여시(生死去來亦如是)
    태어난다는 것은 한 조각 떠 있는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고 / 죽음이라는 것은 한 조각의 떠 있는 구름이 사그러지는 것 / 떠 있는 구름이라는 자체가 내용이 없는 것처럼 / 삶과 죽음의 가고 오는 것 역시 마찬가지.

    매월당(1435~1493)은 조선조 초기 유명한 문인이자 생육신(生六臣) 중 한사람이다. 태어나서 8개월에 글 뜻을 알고 3세에 이르러 글을 지을 정도로 천재적 재질을 타고났다. 5세가 되던 해 세종의 총애를 받아 일찍이 후일 중용하리란 약속까지 받았을 정도. 자라면서 당시 석학인 이계전(李季甸), 김반(金泮), 윤상(尹祥)에게서 수학하여 유교적 소양을 쌓았다. 그의 이름인 시습(時習)도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중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과거준비로 삼각산 중흥사(中興士)에서 수학하던 21세 때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대권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자 그 길로 삭발하고 중이 되어 방랑의 길에 오른다. 그는 관서․관동․삼남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체험했는데, ‘매월당 시 사유록’(매월당 詩 四遊錄)에 그때의 시편들이 수록되어있다. 31세 되던 세조 11년 봄에 경주 남산 금오산에서 성리학(性理學)과 불교에 대해 연구하는 한편,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37세에 성동에서 농사를 직접 짓는 등 환속하면서 결혼도 했다. 그러나 현실의 모순에 반항하면서 다시 관동지방으로 은둔, 방랑길에 살다가 충청도 홍산 무량사(無量寺)에서 59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친다.

    수양대군에 반기를 들고 평생 재야의 길을 걸은 충절의 절개가 굳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일생 고초를 겪었던 사람. 이의 후손이라는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자신의 죽음을 ‘삶과 죽음은 떠 있는 구름 한 조각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한 것은 그의 생애와는 아무것도 맞지 않는 비유로 결국 매월당을 욕되게 했다는 주장이다.

    “변호사, 국회의원을 거쳐 한 나라의 최고 권좌인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라, 갖은 호강을 했으며 권세를 부릴 때 저지른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어 수사를 받다가 뒷걸음칠 길이 막히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속세의 한 인간의 종말”에 다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를 치룬 이후 세상 돌아가는 판세가 괴상하게 되어가고 있다. 정치권 즉 야권이나 소위 노사모 세력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정부여당의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정권퇴진까지 압박하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너희들이 수사를 했기 때문에 자살했다”는 식이다. 적반하장도 초법적이다. 가관이다.

    “부정과 비리에 연루돼 검찰의 조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이 자살한 그 순간부터 성자(聖者)가 되는 그런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언론이 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성자로 만들며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백번 공감되는 말이다. 그는 또 “(언론이)국민장 기간에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취지에서 훌륭했던 점과 잘한 일을 골라 시청자들에게 알려주는 일은 참을 만하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왜 노사모파와 반 노사모파가 TV에서 한번 붙어 국민 앞에서 누가 옳은지 밝힐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지 않는 것이냐”고도 일갈했다. 이 또한 정곡을 찌른 말이다.

    김 교수는 자살 뒤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이다. 비극의 책임은 노 씨 자신에게 있다”면서 “그는 순교자도 아니고 희생양도 아니고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를 다 누렸고, 저승으로 가는 길도 본인이 선택한 것일 뿐 누구의 강요나 권고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고 했다. 매월당의 후손이라는 사람의 말과도 일맥상통되는 생각이었다.

    서울광장과 덕수궁 앞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장례식 전후, 만약 그 장소에서 매월당 후손이나, 김 교수가 이 같은 말을 내뱉었더라면 어느 귀신에게 잡혀가거나 매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휩싸여 가는 세상인심을 보면서 맘에 담고 있는 말(생각)을 못하고 가슴에 부글거리는 사람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왜곡되고 우격다짐만 통하는 세상,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죽은 사람(死肉身)은 기(氣)가 펄펄한데, 산사람(生肉身)은 말(힘)이 없다. 어떻게 이 지경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하면서 ‘경제 살리기’를 입에 달고 오늘에까지 왔다. 지금 국민들이 경제를 살리고, 국정을 잘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히려 야권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죽인 책임’을 들고 나오면서 정권퇴진을 외치고 있다. 오늘의 이런저런 현실을 볼 때, 그 책임은 모름지기 이명박 대통령에게 엄중히 물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이 대통령이 ‘통치 비전’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리더십의 부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미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라고 외쳤을 때, 그의 비전은 ‘꿈’ 그 자체였다.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약속의 땅이 그와 흑인들의 비전이었던 것이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국민들에게 비전을 말하기 전에 리더 자신이 먼저 내부의 요구를 경험해야 한다고 했다. 즉 내면의 깊은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전속의 그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정의’라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우리나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 살아보세’는 소박했지만 강력했던 우리 국민의 시대에 맞는 훌륭한 비전을 제시했던 것이다. 국민들의 경제생활 수준을 높이기 위한 잘살아보기 운동에 국가적인 자원을 총 동원, 투입한 결과 ‘한강의 기적’ 즉, 경제개발계획이 바탕이 되어 1962년 국민소득 80달러에서 1995년 1만 달러를 달성함으로써, 세계 유례없는 부강한 나라로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 민족성은 지도자가 미래의 희망(비전)만 보여주면 굶주림도 참고, 그 어떤 어려움도, 막말로 목숨까지 내 놓는 국민이다.  

    오늘에 와서 집권여당 내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 직계 주류 의원들이 마침내 대통령을 향해 “작금의 민심이반은 독선과 오만에 대한 심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을까. 한나라당 쇄신특위는 소위 ‘끝장 토론’을 갖고 “조각 수준의 국민통합형 내각 개편과 청와대 진용을 개편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집안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항간에는 “살아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리더십의 절반도 못 된다”는 소리가 무성하다. 더 이상 미적거릴 수 없다. 마지막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