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중반 한 아이의 눈에 기가 막힌 공포영화 한 편이 각인되었다.

    영화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그 아이의 앞에서 영화를 보던 한 여자가 입에 거품을 물고 고개를 뒤로 확 제치면서 기절하는 바람에 그 아이는 심장마비에 걸릴 뻔한 추억을 가졌고, 그 아이는 훗날 한국에선 보기 힘든 고어영화 ‘도살자’의 프로듀서가 됐다. 대략 22년 전 나의 얘기다.

  • ▲ 영화 '이블데드'
    ▲ 영화 '이블데드'

    비단 이런 기막힌 우연을 가장한 공포의 극대화를 경험한 내가 아니고서라도 그 당시 ‘아쿠아리스’라는 공포영화와 함께 샘 레이미 감독의 처녀작인 ‘이블데드’는 그렇게 공포영화 마니아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으며 지금도 전설적 영화로 대우를 받고 있다.

    그 후 샘 레이미는 ‘이블데드2’와 ‘이블데드3’를 거쳐, ‘다크맨’을 만들면서 명실상부한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성장했고, 샘 레이미와 함께 배우 ‘브루스 캠밸’ 역시 마니아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이블데드’의 완벽한 성공은 기존의 공포영화에서 보지 못한 그만의 확실한 유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과 그 유머의 사용이 공포스러운 장면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면서 무서우면서도 즐거운 재미를 동시에 관객에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찍으면서 헐리웃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변종 되나 싶었는데 올 해 다시 자신의 영원한 영화적 고향인 ‘공포영화’로 다시 팬들을 찾아 왔다.

    물론 중간중간 ‘기프트’ 같은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들도 있었지만 이번 영화는 자신의 동생인 ‘이반 레이미’와 같이 의기투합해 만들어졌다는 것에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드래그 미 투 헬’ 이다.
     
    영화는 기대감에 부흥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듯 오프닝 자막에서부터 ‘이블데드’의 향취를 느끼게 해주려 노력했다. 그의 진정한 마니아들이라면 그 자막만으로도 흥분 그 자체, 과거 이블데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의 시선으로 영화를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예전 샘 레이미를 그리워하는 팬들에게 확실한 보답이라도 하듯 그만의 유머를 가득 담은 공포영화를 선보였다. 당연한 반응으로 많은 마니아들은 그런 이 영화에 열광하고 있고, 열광할 것이다.

    그저 그런 헐리웃 공포영화와 이제는 지긋지긋한 사다코의 악령에서 헤어나올 생각도 없는 한국의 공포영화에 지겨워 하던 공포영화 마니아들에게 이 영화는 장마 속에 가끔 떠오르는 햇빛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정말이지 이 영화는 공포에 목말라하는 관객들에게 무섭도록 유쾌한 재미를 던져준다.

  • ▲ 영화 '드래그 미 투 헬'
    ▲ 영화 '드래그 미 투 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아쉽다. 샘 레이미만의 유쾌한 유머는 아직 건재하지만 이블데드에서 느꼈던 공포감은 제거되어 있었다. 공포영화 치고는 너무 깔끔하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일 수는 없고, 이제 블록버스터의 감독 반열에 오른 샘 레이미가 풍족한 돈으로 메이저에서 만든 영화니만큼 깔끔함은 기본이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기엔 이 영화에서의 공포 장면들은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아마도 샘 레이미에게 그만의 확실한 색깔로의 귀환을 원해서일는지도 모른다. ‘이블데드’에서의 그 B급스러움이 제거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세월은 흘렀고, 이제 그도 B급이 아닌 메이저의 감독이 된 것에 대해 아쉽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B급 공포영화라는 틀에서 샘 레이미의 뒤를 이을 감독들이 보여지지 않는 것에 ‘B급스러움’에 대한 공허감에서 당연히 변한 샘 레이미의 영화에 대한 허전함이 컸을 것이다.

    ‘브루스 캠밸’의 부재도 한 몫 한다. 샘 레이미의 공포영화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존재가 바로 ‘브루스 캠밸’이다. 최소한 카메오라도 잠시 나올까 했는데 그런 바람은 소용이 없었다. 이블데드에서 손에 엔진 톱을 장착하고 오버스러운 표정에 정신 나간 놈의 대표적 안구 돌리기 연기로 각인된 그의 부재는 간만에 회귀한 샘 레이미의 공포영화에 소금기가 약간 덜 쳐진 느낌으로 다가왔다.
    샘 레이미 잘 나가고 있을 때 자신은 여전히 B급의 전사로 영화판 강호를 쓸쓸히 떠돌아다니다 열 받아 ‘내 이름은 브루스’ 같은 영화를 제작, 주연, 감독하면서 이블데드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한 컷이라도 그 공간을 내줬으면 하는 아쉬움.

    물론 이건 샘 레이미의 귀환에 엄청난 반가움과 함께 그 다음으로 뒤에 있을 줄 알았던 브루스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는 심정일 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왜? 내년엔 드디어 ‘이블데드4’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렇다면 당연히 그 안에 ‘브루스 캠밸’도 있을 테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간만에 공포영화라는 자신의 전문분야(?)로 귀환한 그의 영화 ‘드래그 미 투 헬’ 은 아직 그가 공포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아직 그의 공포영화에 대한 연출력이 변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이 영화는 싸구려 B급 공포영화나, 고어영화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판타지 호러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고, 난 이 영화를 코미디로 착각하고 있다. 그런 의미로 조심스레 공포영화를 못 본다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는 충분히 감당할 만큼의 공포만을 제공해주면서도 샘 감독만의 특유의 유머러스 함이 시종일관 당신을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무서운 세계로 안내할 것이고, 그 여행은 매우 즐거울 것이다.

    공포영화는 일단 무섭고 잔인하다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그저 다른 영화와 같은 영화적 시선으로 이 영화를 바라본다면 그 롤러코스터를 탈 때의 그 짜릿한 재미를 충분히 만끽하시리라 믿는다. 샘 레이미의 팬들이라면 지난 세월의 변화를 감내하시고 그를 만나시길 바란다. 그 세월의 변화를 충분히 인내한다면 무지막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