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참 바보입니다. 불가능한 ‘바람’을 가끔 하지요. 아니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바람’이 오히려 절실합니다.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한번만이라도 다시 뵙고 싶다는 허망한 ‘바람’이 그런 종류일 것입니다.

    지난 5월 25일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하며 추모글을 쓸 때 나는 바보같은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그 누구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기를 희망했습니다. 이것은 실상 불가능한 ‘바람’의 한 종류에 속할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더 간곡했습니다.

    불가능한 ‘바람’을 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야박합니다. 한없이 각박합니다. 국가의 크기를 제외하고 본다면 마오쩌둥보다 이승만·박정희 두 분이 더 큰 기여를 했으면 했지 더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약진운동, 문혁등으로 끔직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중국인민들은 ‘과는 30이고 공은 70’이라며 마오쩌둥을 모든 화폐에 새겨 넣은 반면 우리는 두 분의 기념관조차 없습니다. 대통령 기념관을 세우고 두 분과 노무현 前 대통령을 비롯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지도자들을 모시고 기렸으면 하는 오랜 소망이 그런 불가능한 ‘바람’을 하게 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죽음에 대한 정치적 이용은 정치공방을 불러오고 피아의 격렬한 대립을 초래하여 우리의 지도자들을 한 자리에 모시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것인데 지금 그런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은 실패했습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려 만든 열린우리당은 파산했고,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한 국민통합은 20:80의 선동으로 오히려 극심한 분열로 결과되었습니다. 지난 대선결과는 그의 실패에 대한 객관적 평가였을 것입니다. 2002년도 내가 깊이 우려했듯이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양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성을 가진 인간노무현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500만이 넘는다는 추모객과 국민 다수의 슬픔은 그의 정치적 실패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략과 술수를 넘어서고자 했던 그의 바보같은 도전에 대한 예의일 것입니다. 다시 이런 바보같은 정치인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절망같은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나에게는 이 같은 슬픔들의 본체가 어떤 이념적인 것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정치적 자산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물론 나의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볼 때 그의 죽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부관참시입니다.

    민주당에서 정부 책임론을 거론하며 정치공방의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일입니다.

    "로얄 패밀리 범죄 보호해달라는 건 국민 업신여기고 법치 문란" 4월 8일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이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한 발언입니다. 모모한 의원들이 앞 다투어 검찰에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한겨레도, 경향도, 민노당도 민주노총도 검찰에게 엄정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MBC도 그를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표적수사라며 정치공방을 벌이니 진중권식 표현을 빌자면 기억력 기준으론 붕어정도 되겠군요.

    고인이 2007년 대선 기간 중에 한 인터뷰 내용이 지난 5월 31일 KBS 스페셜에 방송되었는데 그 중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바깥에서 오는 어려움은 이미 각오하고 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라도 거래의 상대방한테 사기 당했을 때는 그냥 견딜 수 있는데 동업자한테 배신당하거나 사기당하거나 하면 도저히 회복하지 못하잖아요? 열린우리당이 깨진 것은 그런 것으로 봐야죠” 

    6월 1일자 한겨레에 실린 문재인 前 실장의 인터뷰를 보면 고인의 심경이 충분히 읽혀집니다. 그랬을 개연성이 거의 확실합니다. 절망적인 상태로 부엉이 바위에 섰을 고인의 등을 떠민 것은 과연 검찰의 성역없는 (표적)수사일까요? 아니면 필생의 가치를 무위로 만들고 정작 절망적 상황에 처했을 때 오히려 발길질을 했던 그들일까요?

    민주당이 정치공방을 하면 할수록 고인의 죽음은 정략화될 것이며 오히려 고인에 대한 민주당의 책임은 더욱 또렷해질 것인데 비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미련한 그런 짓을 왜 하고 있는지 ‘바보같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부디 고인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모셔야 할 일이지 자신들이 내치고 할퀴고 짓밟아 놓고 자신들만의 정파적 대통령으로 부관참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부디... 이것도 불가능한 ‘바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