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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행정은 그 바깥의 사회변화가 함축한 도전에 응전하는 체제라 했다. 도전적 사회변화는 기대를 담은 국민여론일 수도 있고, 역사전개의 추세일 수도 있다. 정부행정의 응전은 사회변화에 대한 소극적 반응은 말할 것 없고, 정치리더십에 의한 시대상황에 대한 적극적 돌파도 당연히 포함된다.

    도전은 정부행정의 리더십에게 일견 시련으로 다가온다. 계명된 리더십은 시련의 위기를 반전反轉시킬 수 있는 기회의 가능성 찾기에 골몰하고, 시련의 돌파에서 소명의식을 확인한다. 마침내 정부행정의 성취는 도전에 대한 반전 성공과 궤를 같이한다. 집권 2년차의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국정과제 제안과 조정과 추진에도 ‘생태행정학(ecology of government)’의 이런 요체가 오롯이 드러난다.

    투표권자의 큰 호응을 받고 출범한 새 정부가 제시한 국정과제는 ‘한반도대운하(정책)’와 ‘녹색성장정책’이 대표적이다. 대운하 대선공약과 집권 1년차 중반이던 2008년 여름에 천명한 녹색성장정책은 원론적으로 서로 닮았다. 경제성장을 겨냥하면서 환경보전도 아울러 실현하겠다는 목표다.

    "과거는 미래를 만든다.”했다. 공약公約 정책과 공언公言 정책 둘이 환경을 강조함은 MB의 정치가 이력과 연장선이다. 이명박의 브랜드네임 하나가 도시환경 지킴이가 아니던가. 도시팽창시대의 대표적 유물이던 서울도심통과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거기에 이전보다 훨씬 낫게 청계천 개천開川을 복원한 공덕으로 세계적인 ‘환경영웅’(Hero of the Environment, 2007년 10월 TIME 특별호)의 한 사람으로 뽑혔던 전력과 맞닿아 있다.

    대선大選 공약 ‘한반도대운하’는 도시친수親水의 근친사업이었다. 일찍이 “이제 우리나라에 저 문명스럽지 못한 강과 산을 개조 하여 산에는 나무가 가득히 서 있고 강에는 물이 풍만하게 흘러간다면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한 행복이 되겠소. 그 목재로 집을 지으며 온갖 기구를 만들고 그 물을 이용하여 온갖 수리에 관한 일을 하므로 이를 좇아서 농업, 공업, 상업 등 모든 사업이 크게 발달됩니다.” 했던 도산 안창호의 국토개조론(상해연설, 1919년 월일 불명)에서 감명을 받았다 했고, 이전에 기업체 최고 경영자로 일 할 당시 암스텔담을 떠난 배가 바다와 전혀 인연이 없는 스위스 내륙도시까지 닿고 있음을 만난 유럽방문 길의 인상이 깊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MB는 대운하계획을 공식 국정과제로 상정한다. 강 정비를 통해 양질 수자원의 여유 확보는 한민족의 명운을 지켜 줄 필수과제이고, 전통시대 때 국토의 물류를 감당하던 조운漕運이 현대적 교통수단의 도입에 밀려 역사 뒤 안으로 사라지자 대․중도시를 제외한 조운 중심지와 그 배후지의 쇠락으로 빚어진 지역격차를 줄일 사회적 방책으로도 파악한다. 산업화시절에 전시효과가 번듯한 국도 확충, 고속도로 건설 등에 건설행정이 집중하는 동안, 제대로 다듬으면 “무언가 보여 주기는” 커녕 오히려 “물에 잠기고 마는” 탓에 하천관리는 뒷전으로 물렸던 전과前過를 고치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운하계획은 여론의 역풍을 맞는다. 무릇 대형국책과제는 효용을 과대평가하고 비용을 과소평가하는 상황, 곧 “숨은 손의 원리(principle of hidden hand)”에 따라 착수․시행했던 세계적 경험에 비춰볼 때, 위정자의 확신과는 달리, 이념성 반정부운동이 증폭시킨 탓에 불문곡직 반대하는 일부 국민여론이 엇박자를 친 것. 정치는 바람을 타는 사회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역풍의 끝자락에서도 환경보전‘부附’ 국가성장방책 강구는 늦출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운하계획으로 상징되던 정부의 물환경 관심이 수면 아래로 밀리는 사이, 더 크게 환경을 바라보는 국정과제를 확정한다. 2008년 광복절에 녹색성장을 국력을 기우릴 국정과제로 선언한 것.

    이전의 대운하계획이 국토행정의 전비前非에서 벗어나려던 ‘소극적 덕목’ 실현의 몸짓이라면, 녹색성장정책 채택은 문명사적 전환기의 기류를 전향적으로 껴안으려는 ‘적극적 덕목’의 제시였다. 적극적 덕목은 이해관계자의 호응을 받기 유리하다. 역사가 말해주듯, 과거의 모자람을 고치려는 개혁改革보다는 미래지향성 새 과업 개창開倉이 참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시대상황이 바야흐로 산업근대화가 극점에 이르면서 이전에 경제와 환경의 상극성과는 달리, 둘의 상보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태근대화(ecological modernization)의 정당성이 이 시대현실에 “먹혀드는” 시의성도 보태진다.

    재발한 에너지 위기가 생태근대화의 정책화에 불을 붙인다. 녹색성장정책을 국책과제로 선언한 2008년 여름 전후, 석유 1바렐이 40 달러에서 140달러대로 또 다시 요동친다. 모든 공업국이 그랬듯이, 오일쇼크에 국가경제가 휘둘리는 불안정 상황에 직면하자 기존 에너지 이용방식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한편으로 대체 에너지원 개발이 절체절명의 긴급과제로 부상한다. 마침 화석연료 의존형 에너지 확보방책이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임을 재확인하자 탈석유 에너지정책의 수립이야 말로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음과 동시에 세계적 현안인 이산화탄소도 감축할 수 있는, 곧 경제성장의 지속화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적극적 대처방안임을 확인한다.

    환경악화는 대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토양오염은 물론 수질오염이 구조적 대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물길을 사통팔달로 연결해서 옛 조운시절처럼 물류기능도 기대했던 4대강의 ‘공격적’ 경영, 곧 대운하계획은 최소임계치(minimum threshold) 사업으로 감량·경영하는 계기, 다시 말해 ‘4대강(생태)살리기’로 한정하는 정당성이 된다. ‘맑은 물 인프라(fresh water infra)’는 유엔환경기구(UNEP)의 권장사업이기도 한 것. 이처럼 “환경보전, 수질 개선, 수량水量 여유확보”라는 정당성 가세로 녹색성장정책이 추가적 탄력을 받는다.

    그럴 즈음 세계금융위기의 회오리에 휘말려 우리도 10년 전 IMF 위기에 버금가는 고용불안이 당면 사회현안으로 급부상한다. 세계경기 부침의 상쇄相殺는 국내경기의 단기부양이 필수적이고, 단기부양에는 내수경제활동인 건설사업 만한 것이 없다 했다. 바로 이 점에서 4대강 살리기에 우선 투입할 일련의 환경개선형 토목사업이 안성맞춤으로 다가온다. 앞서 인용했던 도산의 국토개조론이 녹색뉴딜이란 이름의 이 시대 경기부양책으로 실감나게 부활한 것. 4대강 ‘최소’ 살리기가 세계경기의 급냉急冷때문에 국내 고용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실마리로 부상하였으니, 정책적 반전의 극적인 보기가 아닐 수 없다.

    그 사이 녹색성장정책에 대한 반정부적 시각이 참뜻을 훼절하려는 구실 찾기에 부심하고 있음을 정부도 잘 안다. 녹색성장의 ‘성장’ 대신에 ‘발전’이라 말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는 점잖은 시비 걸기고, 도산의 국토개조론이 자연의 절대보존을 말함이지 국토발전론을 말함이 아니었다는 억지주장도 서슴치 않는다. ‘외형적’ 성장의 지속은 ‘구조적’ 발전 없이는 불가하다는 점에서 성장 대신 발전의 용어를 굳이 선호함은 아카데미 쪽의 변말이겠고, 도산의 국토개조론이 “둑과 댐을 쌓지 않고 홍수를 막겠다.”는 식의 흰소리는 분명 아니었지 않겠는가.

    사회변혁의 도전에 정부행정의 응전은 계속될 것이다. 녹색성장정책은 시대사조적으로 정당성이 한껏 고양되었지만, “비용 없는 성취가 없다.”는 잠언箴言대로 계속 암중모색할 상황 속에서 시행착오와 위험부담도 적잖을 것이다.

    위험부담 기피는 보통사람과 정부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위험이 도사려 있을지라도 정당한 방향성이면 회피만을 일삼지 않을 것이고, 한편 성장하지 못할까 하는 조바심 때문에 어떤 위험도 무릅쓰려는 무모함을 취하지도 않을 것이다. 녹색성장의 세계문명사적 요구 실현에 모범생이 되겠다는 이 정부의 단호한 결의는 흔들릴 까닭이 없다. [김형국/서울대 명예교수·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