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뒤 엿새째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간 여야가 이번엔 '기억상실증'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현 상황의 책임을 상대 당에 떠넘기려는 것인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상대 당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며 지난 17대 국회 당시 상황을 끄집어내 '네탓' 공방을 하고 있는 것.

    포문은 한나라당이 먼저 열었다. 김정권 원내대변인은 23일 국회 브리핑에서 "민주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기억하는 중증 선택적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치료의지가 없으니 시계를 4년 전으로 돌려 처방을 내리겠다"며 공격했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의 전신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첫 정기국회에서 당시 열우당은 김원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전제로 쟁점법안을 단독처리한다는 방침으로 밀어붙였다"면서 "당시 소수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국회를 원만히 진행시키기 위해 직권상정과 단독처리 방침에도 대화의 문을 닫지 않았고 더구나 폭력으로 국회를 마비시키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민주당 의원들,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느냐"면서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는 '소수파인 한나라당과 충분히 대화하고 합리적 타협을 추구했지만 궁극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했고 최재성 대변인은 당시 지도부가 한나라당과 합의문에 서명했을 때 직권상정을 성사시키지 못한 천 대표가 책임을 지고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당 대표는 직권상정을 못했다고 쫓아내고, 타당 대표는 직권상정을 했다고 사과하라니 도대체 고무줄 잣대의 끝은 어디냐"며 "선택적 기억상실증에 합병증으로 자의적 기억생산증이라도 온 것이냐"고 따졌다.

    민주당은 바로 반응했다. 최재성 대변인은 김 대변인의 브리핑 뒤 곧바로 국회 기자실에서 마이크를 잡고 "김 대변인의 브리핑 잘봤다"고 운을 뗀 뒤 "17대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며 반격에 나섰다. 최 대변인은 "17대 국회 개원 첫해는 소위 4대개혁 입법으로 대한민국이 요동쳤고 그해에는 합의처리한 신문법 외에는 아무것도 통과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모두 안됐다"면서 "당시 집권여당이 직권 상정한 첫 케이스가 사립학교법이었는데 논의가 시작된지 2년 가까이 된 2007년 12월에야 직권상정을 통해 통과시켰다"고 반박했다. 최 대변인은 "무려 2년 가까이 한나라당과 논의를 해왔던 것"이라며 "2년의 숙성기간이 바로 당시 집권여당과 지금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최 대변인은 또 "17대 국회에서 직권상정을 한 것은 딱 두건으로 사립학교법과 행복도시특별법"이라며 "그런데 어떻게 (한나라당은) 112개 법안을 열흘 만에 후다닥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올 수 있느냐. 이것은 정말 떼쓰기"라고 비판했다. 최 대변인은 이어 "공룡 여당의 의석을 믿고 한번에 밀어붙이겠다는 오만한 발상이자 폭력적 발상"이라며 "(한나라당이) 국회 역사를 지우고 있다. 그나마 면면히 이어져왔던 '충분히 대화하고 숙성시키고 다수결의 원칙을 관철한다'는 오래된 관행이 17대 국회의 역사"라고 주장한 뒤 "그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정당이 아니라면 불과 수년전의 흔적을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안면을 바꿀 수 있느냐"고 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