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8일 오피니언면 '오후여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박희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여섯시 오분 전! 벽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여섯시 오분 전에 머문 구도, 목과 어깨의 각도가 꼭 여섯시 오분 전이다. 한나라당 대표 박희태(70), 그는 눈도 자는지 졸고 있는지, 술이 덜 깨서 그런지 판단이 어렵도록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언제나 게슴츠레. 한 손은 이마나 턱 한 쪽을 주물럭거린다. 속을 알 수 없는 정치인, 그렇다고 해서 음모형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정가에 남은 마지막 로맨티스트 중의 한 사람이다. 어느 선창가에서 캬! 캬! 소릴내며 소주 한잔 하고 싶은 인간적 온기. 그래서 그에겐 적이 거의 없다. 존경할 만한 장점이다.

    인간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비슷한 좌우명을 택한다. 박희태의 좌우명이 그렇다. ‘응립여수 호행사병(鷹立如睡 虎行似病)’, 앉아 있으나 조는 듯한 매, 병이 든듯 걸어가는 호랑이. 채근담(菜根譚)에 나온다. 박희태는 졸고 있는 매처럼, 병 든 호랑이처럼 정치판에서 살아왔다. 올해로 20년째 정치판에서 건재하고 있다. 20년? 무서운 사람이다. 최고 권력자가 바뀔 때마다 졸고 있는 매, 병든 호랑이와 같은 초인적 인내력, 생명력, 생존력, 생활력. 여기에 야박하지 않은 인성. 그가 대통령 이명박의 자객들로부터 국회의원 공천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다가 올 7월 다시 당대표로 부활했을 때 권력에 대한 탐욕, 그 구질구질한 처신에 대한 비판보다는 동정심이 더 일어났던 이유는 박희태에 대한 이해가 성립했기 때문이다. 오합지졸의 한나라당을 박희태가 잘 이끌 것이라고 이해해서. 그러나 박희태는 대표가 된 뒤 아무것도 결단을 내리지 못해 왔다. 그런데? 박희태가 모처럼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와! 결단. 북한에 삐라(전단)를 보내는 탈북자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박상학과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최성용을 5일 당사로 불러다가 여섯시 오분 전의 태도가 아니라 여섯시 정각의 단호한 태도로 전단 보내기 중단을 요청했다. 박상학과 최성용은 눈물을 뿌리며 중단하겠다고 했다. 눈물을 뿌리며. 매나 호랑이가 되겠다는 당 대표가 그렇게 할 일이 없는가? 왜 약자 앞에서만 여섯시 정각인가? 왜 대통령 이명박을 향해서는 그 화려한 은유의 쓴소리 한마디 못하는가? 실망스럽다. 박희태, 이젠 그도 원로 정치인의 반열에 서 있다. 원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