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에 이 신문 이용식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벌써 20여년이 흘러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지만 1980년대 중반 대학가와 지식인 사이에서 사회구성체(사구체) 논쟁이라는 게 있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 박현채 전 조선대 교수(작고)와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로, 1985년 ‘창작과 비평’ 복간호를 통해 불을 붙였다.

    박 교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통해 자본주의가 발전, 국가기구와 자본이 유착하는 과정에서 사회변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이 교수는 제3세계 ‘주변부’국가는 서구 자본주의의 길을 통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며 종속이론에 기초해 ‘비자본주의적 변혁’을 주창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 반대투쟁, 주체사상 논쟁 등과 맞물려 큰 관심을 끌었다.

    바로 그 이대근 교수가 최근 40여년 연구생활을 정리하는 ‘세계경제 시스템과 동아시아’저서를 통해 놀랄 만한 고백을 했다. 폐쇄적 민족주의에서 개방적 국제주의로, 그리고 이제는 국경없는 범구(汎球)주의(글로벌리즘)로 3단계 인식전환을 겪었으며, 현실속에서 생각도, 가치관도 엄청 변했다는 것이다.

    이미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얘기를 되짚어 보는 이유는 폐쇄적 민족주의자였던 사람조차 이제는 글로벌 경쟁과 협력을 앞장서 외치는 상황이 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5년동안 변화는 더욱 빨리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국내 상황이나 정부 대응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방안이 28일 무산됐다.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중동의 이슬람 왕국들조차 세계적 기업과 대학, 병원을 유치하는 데 열심이다. 반면 지금 한국 사회, 한국 정치는 아직 글로벌 경쟁과는 거리가 먼 ‘평등주의’ 포퓰리즘과 ‘우물안 의식’에 함몰되어 있다.

    이대근 교수는 자신이 평생 화두로 삼아온 민족과 경제에 대해 ‘빙탄불상용의 견원지간’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의 실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 굳혔다고 한다. 경제를 살리려면 민족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사구체 논쟁 이후 20여년의 변화를 보면서 다시 20년 앞에 어떤 글로벌 시대가 펼쳐질지 상상하기 어렵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미리 준비하는 자만이 20년 뒤에도 도태되지 않고 당당하게 생존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