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 '오늘과 내일'에 이 신문 방형남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2년 10월 17일 오전 외교통상부 고위 관리가 전화로 긴급 면담을 요청했다. 평소 논설위원들에게 설명할 일이 생기면 예고를 하고 넉넉하게 약속을 잡던 그였기에 까닭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급한 일이 생겼다”고만 했다. 조금 뒤 만난 그의 입에서 ‘폭탄’이 쏟아졌다. “북한이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 개발을 하고 있다고 미국에 실토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990년대 중반 1차 북핵 위기 때 제네바에서 미국과 북한의 협상을 취재하며 절감한 핵의 정치 외교 군사적 폭발력 때문이었다. 무서운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당시 파리 특파원들이 만든 “북한 핵 때문에 핵핵(헉헉)거리며 지낸다”는 자조 섞인 유행어도 떠올랐다.

    3대 정부가 이어가는 북핵 씨름

    5년 6개월이 지났지만 북핵 충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4강(미-일-중-러)이 남한과 함께 매달리고 있지만 아직도 핵 프로그램 신고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북핵은 어제 첫 미국 방문 길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다. 2002년 10월은 김대중 정부 말기였다. 두 달 뒤 16대 대선이 실시됐고, 그로부터 또 두 달 뒤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다. 이명박 정부까지 3대 정부가 연속적으로 북핵과 씨름해야 하는 처지다. 핵 문제에 매달리느라 정부와 국민이 치러야 했던 기회비용(機會費用)은 참으로 크다. 북핵은 지난 5년여 동안 남북, 한미, 북-미 관계를 좌우하는 주인공 행세까지 했다. 우리는 미국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북한을 주시해야 했다. 북한을 의식하지 않고 미국을 볼 수도 없었다. 그 결과 남북 관계는 끔찍하게 왜곡됐고, 한미 관계는 수선을 해야만 하는 고장상태가 되고 말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무엇보다 원인 제공자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부족했다. 핵으로 인한 갈등은 북한이 시작했다. 최근 남북 관계를 대결 국면으로 몰고 가는 쪽도 북한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새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이유를 우리 탓으로 돌리려는 세력들이 있다. 이런 자중지란(自中之亂)이 북핵 장기화를 부추겼다.

    봄이 되면 으레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려 대북(對北) 쌀 지원이 논의되곤 했다. 작년 2월 말 평양에서 열린 20차 남북 장관급회담도 그런 것이었다. 북은 처음부터 끝까지 식량 차관(借款) 제공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하자고 매달렸다. 북은 서울에서 열린 21차 장관급회담(5월 29일∼6월 1일)에서도 나흘 내내 “쌀 문제 해결 전에는 회담에 임할 수 없다”며 남측을 압박했다. 결국 정부는 작년 6월 북한에 40만 t의 쌀을 보내기 시작했다.

    치밀한 한미 공조로 북 변화시켜야

    올봄에도 북한은 배가 고프다. 세계적인 곡물가격 폭등으로 외국에서 쌀을 사오기도 어려워졌다. 체면 불구하고 손을 내밀던 북한이 이번에는 이 대통령을 역도(逆徒)라 부르며 상대를 안 하겠다고 한다. ‘잿더미를 만들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불바다 발언이 나왔던 게 1993년이다. 세월이 흐르고 2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많은 교류가 있었지만 북은 변하지 않았다. 쌀과 비료 지원 등 인도적 배려에 털끝만큼이라도 고마움을 느낀다면 잿더미 같은 험악한 말을 내뱉지 않을 것이다.

    당근이 통하지 않으면 채찍을 생각해야 한다. 휘두르지 않아도 되는 ‘부작위(不作爲)의 채찍’도 있다. 남북대화가 중단되면 어느 쪽이 더 괴로운지 보여줄 수도 있다. 핵을 끌어안으면 안을수록 남한의 돈과 쌀이 멀어져 생존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북한에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미 공조도 이제는 북한의 변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당근과 채찍의 치밀한 조합을 찾아내 지긋지긋한 핵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