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명박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고 나갈 새 정권이 닻을 올린 지 열흘 남짓 된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능력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대선 이후 시작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까지 포함한 지난 2개월의 시간이 결코 짧은 기간만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전개되는 국제경쟁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대한민국호를 이끌고 나갈 선장과 이를 보좌할 항해사, 조타수, 갑판장의 역할이 재임기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능력과 역할이 평가될 정도로 한적하고 호사스런 직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 대한 묻지마 지지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실정으로 인한 민심이반과 이에 따른 반사효과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대통령직 인수인계 업무를 수행하고 새 정부가 출발하기까지의 과정은 향후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정책지향점과 한계,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적 반발과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기회비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평가지표로 작용할 수 있다.

    이전 노무현 정부가 근소한 차이로 16대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가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이를 지지한 민의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잘못을 범했다. 탄핵 이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직면했던 정치적 패배는 수구와 보수에 대한 국민적 반발과 저항이 한국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집권5년은 한국정치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할 수 있는 진정한 진보정치의 부재와 민주화 만능세력의 허위와 무능을 폭로하는 기간의 연속이었다. 한국사회는 성공적인 산업화를 자축하면서도 민주화 과정에서 핍박 받은 재야성원들에 대한 집단적 원죄의식에 속박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보여준 자가당착과 아마추어리즘은 한국사회가 총체적으로 떠안고 있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집단적 부채의식을 탕감시키기에 충분한 역할을 수행했다.

    노무현 정부의 참담한 좌초가 빚어낸 결과는 10년간 야인생활을 하던 한나라당을 집권여당으로 탈바꿈 시키고 성장과 발전이라는 담론을 다시 국민적 화두의 첫 머리로 진입시킨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치열한 논쟁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진보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시대정신이 성장과 개발 지향의 실용주의라는 키워드에 의해 밀려나고 만 것이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백하다. 국민의 생활수준을 양적으로 향상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 삶의 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결국 보수와 진보라는 양대 정치산맥이 해결해야 할 공통된 과제는 성장을 통해 국민에게 충분한 재화를 공급하고 이후 복리증진을 더욱 확대할 수 있는 추가서비스를 제공 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달성한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는 세계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현상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폭발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는 상대적 불평등과 소외감에 따른 사회적 불만이 바닥 깊숙한 곳에서 축적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고비는 이와 같은 사회적 에너지의 집합적 표출과 폭발에 대응하는 정치세력의 조직적 능력에 따라 좌우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 또한 한나라당의 국가경영 능력에 따라 든든한 반석 위에 올려질 수도 아니면 신기루와 같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대통령 취임 이전에 이미 실망감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은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과 같은 얼치기 진보세력과의 차별화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신임정부와 한나라당이 범보수세력의 집결이라는 기치하에 보수와 수구의 진정한 의미를 분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승리감에 도취된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섬김의 대상이 아닌 군림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보수정당이 아닌 수구정당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졸속으로 추진된 장관후보 인선과정의 난맥상을 들 수 있다. 땅투기, 편법증여, 탈세, 병역회피, 논문조작 같은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는 정권을 진정한 보수정치세력으로 인정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조각과정에서 보여준 파렴치함이 대한민국에서 수구와 퇴행의 시대가 부활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상대적 불평등과 소외감을 해소하지 못했을 때 한국사회가 떠맡아야 할 사회적 비용의 규모가 얼마나 막대한지 지난 민주화 과정과 참여정부의 집권기간을 통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이끌고 나갈 진정한 보수는 개발독재 시대의 부작용이 잉태한 수구와 배제의 정치를 뛰어 넘어 확고한 정치적 신념과 도덕적 우월성으로 무장한 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행동으로 옮길 준비가 되어 있는 세력으로 새롭게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최전선에서 군사작전에 참여했던 영국 왕자에 대한 왕실의 근심과 걱정이 이 나라 보수세력 모든 부모에게서 똑같이 발견되는 날 대한민국은 진정한 선진국과 강대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