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인의 가장 큰 명절은 춘절(春節)이다. 춘절로 대표되는 중국의 긴 축제는 첫 보름을 맞이하는 음력 15일까지 계속된다. 춘절을 보내기 위한 인구대이동이 시작되면서 평시에도 분주하던 전국의 기차역이 귀향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춘절을 목전에 둔 최근 중국의 많은 지역은 연이은 폭설과 강풍에 휘말렸다. 하지만 기차역으로 끊임없이 운집하는 인파의 행렬을 보면 무릎 아래까지 차 오르는 눈 더미도 춘절을 맞이하려는 중국인의 염원을 꺾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새해를 맞이하는 중국인의 행사 중 하나는 불꽃놀이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밤새는 줄 모르고 수많은 불꽃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으며 이것만으로는 부족한지 골목마다 사람들이 몰려나와 저마다의 소원을 담은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눈보라를 뚫고 밤새 계속되는 불꽃놀이와 폭죽소리는 마치 전쟁터에 나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늘 높은 곳에서 터지는 섬광은 조명탄이 흩날리는 모습과 비슷하며 골목을 굽이돌며 이어지는 폭죽소리는 시가전에서 울리는 총성과도 같다.

    실질적으로 중국은 지금 전쟁 중이다. 1978년 개혁개방을 실시한 이후 지난 30년 동안 중국은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 결과 중국의 풍부한 노동력은 전세계 제조업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으며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자원은 중국을 에너지의 블랙홀로 만들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의 침탈과 봉건주의 아래에서 신음하던 중국인들은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만끽할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전지구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는 돌격전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개혁 이후 공산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어중간한 동거를 표방하던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는 말 그대로 수사적 표현에 그치고 말았다. 모택동이 공산혁명을 통해 도입한 인민공사와 단위체제는 전근대적인 억압으로부터 인민을 해방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자체가 지니고 있는 모순으로 인하여 중국의 성장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요인으로 작동하고 말았다. 또한 노동자국가를 지향하며 설립된 국유기업들의 대부분은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하며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애물단지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평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분배 우선의 정책이 더 이상 중국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모든 중국인은 잘 알고 있다. 이제 중국은 글로벌리즘을 등에 업고 전세계 자본주의 시장을 역동적으로 질주하는 기관차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상황을 반영하듯 요즘 중국인들이 건네는 새해 최고의 덕담은 “꽁시빠차이(恭喜發財)”이다. 굳이 우리말로 옮긴다면 “재산을 많이 벌기를 바랍니다” 라는 뜻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왼손으로 오른쪽 주먹을 가볍게 감싸 안으면서 상대방에게 부의 축적을 기원하며 건네는 이 인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중국인들의 경제심리를 가장 적절히 드러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먼저 부자가 되라는 등소평의 선부론(先副論)이 이제 명실상부하게 모든 중국인의 마음 속에 하나의 지표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성장의 성과를 합리화하기 위해 주창된 선부론은 급속한 자본주의화로 인해 오늘 날 중국사회가 안고 있는 빈부격차 및 지역격차의 문제점들을 무마시키는 논리적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리즘과 중국 고도성장의 상관관계와 관련해 학술적으로 흥미로운 논쟁이 있다. 글로벌리즘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부를 증가시켜 삶의 질을 개선시키고 있다는 주장의 주요 사례는 중국에서 찾아질 수 있다. 13억의 인구를 지닌 대국이 자본주의로 편입된 이후 연 평균 10%대의 고도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서 그 누구도 글로벌리즘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역의 논리도 가능하다. 개방 이후 중국은 빈부간의 소득 격차가 더욱 커져 상위권과 하위권간의 경제적 차이가 더욱 늘어났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글로벌리즘이 일부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부여할 뿐 사회의 약자들에게는 가혹한 시장 논리를 강제한다는 사실로부터 중국도 예외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자연과학과 달리 사람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서는 진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진실에 근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논쟁할 수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글로벌리즘이 중국인들에게 이전에 향유할 수 없었던 부와 만족을 가져다 줄지 아니면 계층간의 갈등을 증폭시켜 중국식 사회주의를 위협할 정도의 새로운 정치갈등을 유발시킬 것인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성공한 공산주의인지 아니면 새로운 자본주의 발전형태인지에 상관없이, 새해를 맞이하는 중국인들은 경제적으로 보다 윤택한 내일을 꿈꾸고 있으며 이들의 작은 소망을 담은 폭죽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거리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