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에 하영선 서울대교수가 쓴 '1997+2007=2017'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97+2007=2017, 산수 셈법으로는 누가 봐도 틀린 계산이다. 그러나 역사 셈법으로는 맞는 계산이다.

    1997년과 2007년의 역사적 체험을 좌우명으로 삼고 2017년을 내다보고 제대로 뛰지 않으면 한국은 21세기의 마라톤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지난 연말 학생들을 데리고 중국의 베이징을 거쳐서 열하를 다녀왔다. 올림픽 준비에 정신없는 베이징은 서서히 상하이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올해가 개혁개방 30주년 되는 해다. 오늘의 베이징은 문화혁명과 천안문 사태의 두 역사적 체험을 좌우명 삼아 개혁개방의 중국이 21세기를 향해 달린 덕이다.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은 본격적 선거의 계절에 접어들었다. 누가 민주당과 공화당의 후보가 될지를 전망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어느 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도 미국의 세계적 역할에 커다란 차이는 없을 것이다. 지난 중간선거 이후 미국의 21세기 세계전략에 관해 공화당과 민주당 인사들이 함께 참여한 초당적 연구보고서들이 우후죽순처럼 출판되고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9·11테러와 이라크전의 이중 역사 교훈을 겪으면서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하되 이라크전과 같은 군사전이 아닌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 기반을 마련해 가고 있다.

    인수위가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벌집 쑤신 듯이 시끄럽다. 그중에도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은 통일부다. 1969년 45명 직원의 꼬마 국토통일원으로 출발해서 현재 550명 규모로 커진 통일부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통일부 폐지 여부를 제대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우선 21세기 한반도 통일문제를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냉전시기 통일논의가 오랫동안 불온하게 취급됐다면 탈냉전시기 통일논의는 정반대로 성역화됐다.

    통일이라는 마패만 보이면 어떤 국내 또는 국제 문제도 무릎을 꿇어야 했다. 반통일세력이라는 낙인은 식민지 시기의 친일세력으로 분류되는 것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21세기 통일논의는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통일이 하루빨리 풀어야 할 역사적 숙제인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우리 민족의 유일한 애창곡이 돼서는 안 된다. 21세기는 더 이상 일통(一統)의 세기가 아니라 전통(全統)의 세기이기 때문이다.

    21세기 통일문제를 과거지향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가려면 그에 걸맞은 신중한 정부조직의 재검토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햇볕정책 10년의 통일부는 지나친 '통일우선정책'으로 국내 및 국제문제에 어려움을 가져왔다. 또 통일부가 통일문제를 21세기적으로 풀 수 있는 미래지향적 조직인가도 의문이다. 인수위는 그 대안으로서 21세기 통일문제를 외교통일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국가정보원,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대안은 곧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선 최대현안문제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문제는 단순히 6자회담과 같은 국제적 안목과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동시에 북한적 특수성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통일부가 외교 아마추어인 만큼 외교통상부도 이에 못지않게 북한 아마추어다. 무리하게 합쳐놓은 외교통일부는 기대와는 달리 북핵과 평화문제의 국제정치적 특성과 북한적 특성이라는 이중적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남북교류와 경제협력은 단순한 경제나 국토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문제다. 북한을 개혁개방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돈의 힘으로만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21세기 미래지향의 그물망 통일론을 실천에 옮기려면 통일 이후 북한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정보수집과 집중적 연구가 필요하다.

    통일문제를 21세기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한 새로운 조직 개편은 10년 햇볕론의 통일부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새로운 통일론에 걸맞게 재편하는 것이다. 구시대적 통일지상주의를 벗어나서 미래지향의 통일현실주의에 따라 그동안 불필요하게 찌운 살을 과감하게 빼고 날렵한 모습으로 통일부 또는 통일처를 새로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