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고공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선거일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치세력이 아직도 후보단일화를 추진하는 지리멸렬한 정황을 감안한다면 이번 대선에서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한나라당 후보의 집권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역대 어느 선거보다 저조하다는 것이다. 집권여당이 가지고 있는 선거프리미엄을 고려할 때 현재 여당후보의 지지율은 제대로 된 선거전략을 세우기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처참해 보인다.

    하지만 여권 지지율의 추락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야당의 대선후보가 결정된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독자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여당후보의 지지율을 상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후보가 BBK, 도곡동 땅 문제, 자녀의 위장취업 등에서 도덕적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히 존재하고, 이회창 후보가 경선불복종의 멍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인데도 여당 후보의 지지율이 이들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그만큼 크고 방대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아직 대선이 실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의 지지율이 투표율로 그대로 연결될지 여부에 대해서는 속단하기 이르지만 현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율 철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2002년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 후보가 최초의 국민경선제를 도입한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당선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라는 거함을 꺾고 16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파란을 연출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더욱 적었다. 당시 노무현 후보가 당내 경선을 거쳐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의 거침없는 과정은 한국인들이 마음 속에 극적인 인생역전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당시 열정과 모험의 정치적 쓰나미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외환위기 이후 고통 받던 대다수의 보통사람들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과 그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 같은 것이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비주류로 평가 받던 사람들의 과감한 도전의식과 저항정신의 집합적 표현이 노무현 정부 탄생의 주춧돌로 작용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2004년 노무현 정부가 탄핵되었을 때 광화문에 모인 10만이 넘는 촛불의 행렬은 그들 모두가 좌파여서도 공산주의자여서도 아니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그들의 이상이 극단적인 보수의 물결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했다는 분노가 그토록 많은 국민들을 하나의 대오로 모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불과 5년 만에 현 집권세력을 이토록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만들었을까.

    노무현 정부의 쇠락을 촉발시킨 주된 원인은 정권교체 이후 권력층으로 새롭게 편입된 신진엘리트들이 보여준 착각과 허위의식 때문이었다. 386으로 대표되는 신흥권력층은 자신들의 권력창출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사회적 에너지를 스스로의 정치철학을 합리화하고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간주하였다. 그 결과 국민들은 공허한 메아리와 같은 자기정당화와 자기합리화의 궤변을 참여정부 5년 동안 신물이 나게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권력의 늪에 빠져든 정치세력은 더 이상 개혁을 추진할 능력도 열정도 무장해제된 상황이었다. 능력과 비전 대신 정체성과 코드 위주의 인물충원 방법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국정운영의 기초로 삼아야 할 지도세력으로서의 자질과 의무를 스스로 포기했음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게다가 진보세력을 자처하는 노무현 정부는 사회통합을 통한 국가발전이라는 거시적인 시각과 승자의 여유로 상이한 노선의 정치세력을 끌어안는데 실패했다. 글로벌 시대의 국가지도자에게 요청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통합의 리더십이다. 급속한 변화의 시대에 요구되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것과 달리 노무현 정부는 사회적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포퓰리즘을 국가의 주요 정책방향으로 설정하며 미래지향적 국가발전 방안을 내오는 작업에 실패하고 말았다.

    참여정부로 대표되는 진보세력의 실패는 한국정치에 새로운 도전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이에 대한 반작용이 한나라당에 대한 변치 않는 성원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출범 당시 가장 우려됐던 부분은 노무현 정부의 미숙한 국정운영이 이후 건강한 진보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가로막아 보수와 진보정당이라는 양당체제로의 전환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현재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은 2004년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모인 하나하나의 손을 좌익의 준동이라는 뭉뚱그린 표현으로 덮어버리는 오류를 저질러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보수주의자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10년의 기간을 좌파의 사기극 정도로 치부하고 그 속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이들 또한 5년 뒤에 오늘 날 노무현 정부가 부딪힌 현실과 똑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할 소중한 자산을 평가절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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