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후 5년간 중국을 이끌고 나갈 새로운 정치지도부를 선출하고 국내외정책 방향을 정립한 제17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이하 전대)가 지난 14일 후진타오(胡錦濤)의 정치보고를 끝으로 폐회됐다. 이번 전대는 집권2기를 맞이한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친정체제 강화여부와 덩샤오핑 이후 일관되게 추진된 성장위주 정책에 따른 부작용을 억제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발전방향을 논의할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전대를 통해 후진타오는 자신의 통치이론인 '과학적 발전관(科學的發展觀)'을 중국공산당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하는 당장(黨章)에 삽입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스스로를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에 상응하는 정치지도자의 반열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이는 정치적 카리스마의 부족과 독자적 정치세력 구축의 실패로 인해 장쩌민이라는 정치적 외풍에 시달려온 후진타오가 집권후반기를 맞아 자신의 정책노선을 보다 분명히 추진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17대 전대를 통해 후진타오가 4세대 지도자로서의 독립적인 위상을 확립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진타오의 정치적 장악력이 지난 5년에 비해 크게 향상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와 같은 논의는 중국공산당 권력의 핵으로 분류되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후진타오가 자신의 권력기반인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派) 출신 인사 중 랴오닝성(遼寧省) 서기 출신인 리커창(李克强)만을 진입시킨 반면 성장과 발전을 강조하는 개혁파와 장쩌민의 영향력이 큰 상하이방(上海幇) 출신 인사들이 여전히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근거로 하고 있다.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기능하는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사들의 외연만을 볼 때 후진타오가 정치적으로 수세적인 위치에 처해 있으며 이는 중국 정치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이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이번 전대는 중국공산당의 통치가 더욱 안정적인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계기가 될 것이며 정치적으로 ‘중국식 민주주의’를 향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지난 5년간 지속된 후진타오와 장쩌민 사이의 갈등이 제로섬 게임을 지향하는 권력투쟁이었다기 보다 개혁개방의 수위와 속도를 조절하는 입장 차이에서 발생한 논쟁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개혁이라는 원칙적인 틀에 합의한 채 이를 수행하는 방법과 방향에 대한 논쟁이 후진타오와 장쩌민 사이에 발생한 갈등의 축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은 새로 출범한 상무위원회의 상이한 인적 성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극한 대립을 통한 권력투쟁을 추구하기 보다 견제와 협력을 통한 상생과 정치안정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장쩌민으로의 권력이양이 평화적으로 진행된 이후 세대가 거듭되면서 안정적인 권력승계 방식이 대세로 자리잡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절 빈번히 발생했던 극심한 이데올로기 투쟁이나 사활을 건 권력투쟁이 중국 공산당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번 전대를 통해 중국 공산당은 공개적인 경쟁을 통한 차기 지도자 선출과 상무위원의 인적순환을 보장하는 제도적 원칙을 수립했다는 점에서 점진적 정치개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 50대의 젊은 피인 상하이시 당 서기 시진핑(習近平)과 랴오닝성 당 서기 리커창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진입하면서 본격적인 후계경쟁에 돌입한 것은 덩샤오핑의 유훈정치에 기대온 장쩌민, 후진타오와 달리 차후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실적경쟁을 통한 공개적인 평가가 가능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고령자인 뤄간(羅幹 72), 우관정(吳官正 69), 쩡칭훙(曾慶紅 68)의 일선후퇴는 연령에 기반한 인적청산이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계파에 대한 안배를 들 수 있다. 특히 4명의 새로운 상무위원을 충원하는 과정에서 후진타오의 일방적인 독주가 허용되지 않고 공청단파, 상하이방, 태자당(太子黨)이 서로를 견제하며 당내 다양한 정치구조의 출현을 가져왔다는 점은 일당지배구조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중국이 다원화된 정치시스템으로 이행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이번 전대는 성장의 가속화와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중국식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중국 경제발전의 기적을 창출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와 함께 정치에서도 ‘중국식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실험의 장이 열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당정의 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서구의 의회민주주의와 달리 당정의 일치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지속적인 성장과 점진적인 정치개혁을 추구하는 중국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