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가인상과 물가상승에 반대하며 불붙기 시작한 미얀마의 반정부 시위가 군부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최악의 유혈사태로 치닫고 있다. 1988년 이미 수 천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키면서 미얀마 시민의 정치적 저항을 억누른 경험이 있는 군사정부는 국제사회의 규탄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다시 물리력을 동원하는 초강수를 선보이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미얀마 국민의 용기 있는 저항과 미얀마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외부세계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위는 군사정부의 억압적 통치수단이 얼마나 견고한지만을 입증하며 막을 내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얀마에서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반정부 시위와 연이어 총탄에 쓰러지는 시민들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시선은 안타까움 그 자체이다. 특히 무력진압 이후 무고한 시민과 승려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무자비한 탄압과 검거선풍으로 인해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이번 시위의 실패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불안감과 사회적 절망감의 폭과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미얀마 국민 전체의 정치적 패배감을 증대시키면서 결국 군사정권의 집권을 연장시키는 자산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군사정부의 통치하에서 민주화의 험난한 과정을 경험한 적이 있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미얀마의 반정부 시위를 보며 짙은 심리적 동질감과 깊은 연민의 정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1980년 광주에서의 패배를 극복하고 이후 전국적 저항을 통해 쟁취한 승리의 기쁨과 영광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에게 미얀마 사건은 특별한 관심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많은 사회단체와 정치인들이 미얀마 군사정권의 잔악한 행위를 비난하며 민주화를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도 아직 우리 국민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80년대식 운동의 불꽃이 강렬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얀마 사건에 대한 대부분의 논평과 성명이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미얀마 군부의 반민주적 행위를 비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미얀마에서 민주화 운동이 실패한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검증은 결여되어 있다. 거꾸로 말하면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기동전 형태의 민주화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이다.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국가들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개별 국가의 민주화는 어느 하나의 고착된 형태를 따르기 보다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경로를 걷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어떤 요인보다 각 국가의 경제발전 정도가 성공적인 민주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임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에서 민주정부의 운명은 해당 국가의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궤를 달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 권위적인 군사정부에 의해 통치되었다 할지라도 군사정부가 발휘하는 리더십과 경제발전 성과에 따라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상이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얀마와 한국이 1960년대 똑같이 빈곤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었지만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반면 미얀마는 여전히 폭압적인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함이 이를 웅변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결국 박정희 정권 시절 달성됐던 눈부신 경제발전의 효과를 빼놓고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박정희 정권의 성과를 논하고 공과 과를 분리하는 작업에 인색하기 짝이 없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재평가의 인색함은 비단 경제적 업적을 평가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치세력은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에 대한 평가에서도 상이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 시절과 현재 미얀마에서 자행되는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서슬 퍼런 비판의 칼날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유독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에 대해서는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가장 비근한 예로 남북한의 정상이 다시 만난 제 2차 정상회담에서도 인도적 접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 양측은 원칙적인 의견만 나누었을 뿐 실무적 차원의 구체적인 논의를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천부적 인권의 보편적 적용을 강조하는 사회단체와 정당들이 이에 대해 어떠한 논평과 비판도 발표하지 않는 것은 편향적이고 왜곡된 가치관과 정치적 시각이 한국의 사회단체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지를 잘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는 이미 민주화의 단계를 넘어선지 오래이다. 미얀마의 비극과 달리 한국에서 민주화가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지속적인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기저에 박정희 정권의 공로가 깊게 배어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미얀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관관계에 대한 폭넓은 토론과 논의가 기존 사회단체에서 널리 진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