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세계10위권의 경제강국이다. 한국이 이룩한 급속한 경제성장과 성공적인 민주주의의 정착은 개발도상에 있는 다른 국가들로부터 찬탄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지 오래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사절단을 파견해 우리의 경험과 발전양식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의 독특한 경험 중 이들 국가들이 특히 관심을 보이는 것은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의 기원은 1970년 박정희 정권이 한해(旱害)로 인해 발생하는 농가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던 작업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농가의 소득증대와 농촌마을의 구조개편을 모색하던 박정희 정권은 마을 별로 책임주체를 선정해 “잘살기운동”을 추진했으며 운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결과에 따른 적절한 보상과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새마을운동이 농촌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자 박정희 정권은 이를 도시와 직장 단위까지 확장하면서 전국적 차원의 근대화 작업으로 확산해 나갔다.

    새마을운동은 세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근대화에 크게 공헌했다. 첫째, 효율성의 측면에서 새마을운동은 농촌의 실질적인 소득증가에 이바지하며 생활환경의 근대화를 추진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둘째, 의식개혁의 차원에서 볼 때 전국적인 국민운동으로 확대된 새마을운동은 사람들에게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셋째, 새마을운동이 보여준 사회통합과 시너지 효과를 들 수 있다. 당시 경제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상층구조가 경제발전계획을 주도해 나갔다면 새마을운동은 아래로부터 민관의 참여와 동원을 통해 단결된 사회에너지를 이끌어내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새마을운동이 한국의 경제발전과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그 의미가 크게 희석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잊혀지고 있는 새마을운동이 지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개발국가들에서 부활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피력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도자로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를 들 수 있다.

    지난 달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캄보디아 여객기가 추락했을 때 사고현장의 일선에서 수색작업을 직접 지휘한 훈센 총리는 지금도 틈만 나면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들춰보며 한국의 경험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이 캄보디아의 최대 투자국가로 부상하면서 캄보디아의 한국 배우기 열기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극적인 사례로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이자 제조업의 굴뚝이라고 불리는 이웃 나라 중국을 들 수 있다. 중국이 새마을운동에 보이는 관심은 중국 최고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의 의지에서 확인될 수 있다. 이들은 지방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세미나에서 한국 새마을운동의 경험과 역사를 학습할 것을 촉구하면서 3년간 3만 명의 중국 공무원을 한국에 파견해 새마을운동을 배우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간 교류의 역사가 기원전부터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처럼 중앙정부차원에서 중국이 한국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 적극적이었던 전례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사실 개발국가나 독재국가에서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을 동원하는 것은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냉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50년대 후반 중국은 대약진운동을 실시했으며 북한은 천리마운동을 조직했다. 대약진운동과 천리마운동 모두 경제적 후진성을 극복하고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경쟁국을 따라 잡기 위해 실시된 국가적인 동원시스템이었지만 중국과 북한은 경제적 자립에 실패하며 결국 생산성의 낙후와 삶의 질이 퇴보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중국과 북한의 실패와 달리 새마을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한국이 세계화의 조류를 회피하기 보다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며 그 속에서 생존 방법을 창조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만약 박정희 정권이 철저한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며 북한처럼 자력갱생의 길을 선택했다면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이라는 동아시아적 모델을 창출하는데 실패했을 것이며 새마을운동 또한 저개발국에서 나타났던 무수히 많은 국민동원의 한 사례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진척되고 개인주의와 다원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한국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국민동원 시스템에 대한 논의 자체가 어쩌면 시대성을 상실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주목 받는 새마을운동의 실천적 의의를 애써 외면하는 것은 오늘 날 한국사회가 이룩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사회적 뿌리를 도외시하는 것과 같다. 새마을운동이라는 소중한 무형의 자산을 되살리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자세를 통해 대한민국이 나아갈 독창적 방향을 설정하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