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 경선 후보들 간 대결이 점입가경이다. 당내에 국민후보검증위원회라는 것을 설치해 놓고도 정작 검증권은 검찰에 넘겨줘버렸다. 방어 차원의 고소·고발이라고 하겠지만 지켜보는 국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정부기관에 자신들을 해부해달라고 메스를 맡긴 격이니 이보다 더 무모한 일이 또 있을까.

    강재섭 당 대표가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유력 후보들의 캠프를 맹비난한 것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리 운명을 그(검찰의) 칼날에 맡겨놓고 알아서 해달라니 무슨 꼴이냐. 정신 나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캠프 같다.” “어떤 캠프 인사들은 상대 후보의 의혹을 연일 언론에 공표해 골육상쟁을 유발하고 있다.” 듣고보니 정말 그렇다.

    아마 이명박 캠프측에서도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고 여기기는 할 것이다. 아무리 상대의 공격이 ‘모함’으로 여겨지더라도 김형오 원내대표의 말처럼 당의 운명을 검찰에 맡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쉽게 취하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건 타오르는 ‘의혹’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자초한 진퇴양난이다. 과거 권력기관 노릇을 톡톡히 하던 때의 검찰 같았으면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에 입이 쩍 벌어졌겠는데, 지금은 글쎄…. 검찰이 정파적 이해에 휘둘리지는 않겠지만 야당 후보의 결백을 입증해주자고 안간힘을 써줄 리도 없다.

    유명 인사들을 경쟁적으로 끌어들여 덩치는 산(山)만해졌으나 도무지 꾀라고는 없어보이는 게 유력 주자들의 캠프다. 후보의 독선이 지나쳐서 아무도 쓴소리를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인의 장막이 둘러쳐진 경우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참모들이 저마다 잘나서 자기 목소리만 내는, 이를테면 추장만 있고 아파치는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에는 한발 빼면서 논공행상만 기대하는 사람들이 참모진을 형성하고 있음직도 하다. 어느 쪽이든 조직의 유연성과 현실적응력을 훼손하는 요인이 된다. 그런 조직에서 효과적인 전략이 나올 리 있겠는가.

    한나라당의 두 유력 주자와 그 참모들은 많이 거북하긴 하겠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언급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민의 관심은 지금 온통 한나라당에 쏠려 있지만, 대통합이 되면 그 순간부터 범여권 후보에게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엊그제 자택을 방문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그가 했다는 말이다. 자꾸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게 아주 안 좋아보이긴 하지만 말인즉슨 옳다. 한나라당 후보 자리를 차지하기만 하면 대통령직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인데 이야말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강 대표는 ‘골육상쟁’이라고 비장하게 표현했지만 한나라당 성원들이 서로를 ‘골육’으로 여겨오기나 했을까. 게다가 정당은 ‘골육의 집단’이 아니라 이념과 목표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결사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의 정당들은 주로 개인적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자신의 이익 앞에서 골육상잔보다 더한 것인들 마다할까.

    문제를 풀려면 ‘골육’ 의식부터 털어내야 한다. 게임에서 필요한 것은 ‘정실’과 거리가 먼 ‘역량’이다. 그리고 예선의 상대는 적이기도 하지만 결선으로 자신을 이끌어주는 셰르파이기도 하다. 유능한 셰르파만이 자신을 정상에 올려줄 수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마술 같은 해법이야 있겠는가. 검찰의 수사를 포기시키려 이런 저런 말을 할수록 올가미는 죄어들게 마련이다. 지금으로서 최선의 방법은 검찰보다 앞서 가는 것이다. 당내 검증을 활성화해 충격을 최대한 흡수할 때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 정직보다 더 나은 대응책은 없다는 것은 언제나 소중한 상식이다. 두 후보, 나아가 모든 출마 희망자들이 함께 명념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