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이 ‘민중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의 간판을 내걸었지만 사실은 공산혁명을 목표로 하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그러나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이 자생적으로 공산혁명에 눈을 뜨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반드시 배후에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조종하는 혁명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기 힘들다. 그러나 친북좌파정권 10년에 서서히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비교적 일찍 드러난 사람들로서는 강정구나 송두율, 또는 한완상과 이영희 같은 사람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낸 사람으로서 안병직이나 백낙청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을 말한다면 나는 이들에 대해 연구한 적이 없다. 다만 언론에 보도된 그들의 단편적 발언 내용을 보고 그렇게 추측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번에 백낙청이 지난 6월 3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있었던 국제심포지움에서 행한 기조연설이 영문으로 번역되어 “Japan Focus"란 인터넷 매체를 통해 배포된 것을 보게 되었다. 제목을 “1987년 6월 이후 20년 한국의 민주주의와 평화: 현 상황과 미래 전망”(Democracy and Peace in Korea Twenty Years After June 1987: Where Are We Now, and Where Do We Go from Here?)으로 번역할 수 있는 글이다. 이 연설은 한국의 친북좌파들을 조종하고 있는 지하, 지금은 상당수 밖으로 나왔지만, 이론가들의 시국인식에 대해 한 편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하 내가 이해하고 해석한 그의 연설 내용이다.

    우선 87년의 ‘6월투쟁’에 대해 그는, 일방적 해석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그 목적이 민중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 적어도 사회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란 점을 말하고 있다. 6월투쟁을 이렇게 해석할 때 형식적인 면(절차적 민주주의)에서는 성공하였으나 실질적인 면(민중혁명)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6.29선언은 민중투쟁의 완전한 승리를 막기 위한 사기행위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낙청 자신은 6월투쟁을 그런 시각에서 보아서는 안 되고, 한반도의 분단체제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의 분단은 1953년의 휴전으로 비로소 체제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분단체제는 1960년의 4.19나 1980년의 광주사태, 그리고 1987년의 6월투쟁을 거치면서도 해소되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이들 사건들을 분단체제와 연관시키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군사정권이 무너진 것과 국제사회에서 공산블럭이 해체된 것이 분단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었으나 2000년의 6.15회담으로 비로소 분단체제가 극복될 전망이 보인다고 하였다. 분단체제 불안정이 곧 북한의 공산독재체제의 불안정과 같은 의미란 것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는 다음 발언에서 더 명확해진다. 그는 1997년의 외환위기를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것과 ‘북한흡수통일’에 대한 꿈을 추구하는 것의 약점이 대대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외환위가와 북한의 식량난이 분단체제를 위태롭게 하였으나 6.15선언이, 현 분단상태를 지속하거나 외세에 대한 의존성을 증가시키기 보다는, 상호 화해, 협력 및 점진적 통합에 있어 새 돌파구를 찾는 한국인들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6월투쟁 체제와 관련하여 그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6월투쟁은 본질적으로 분단체제의 한 부분일 뿐이며 (민중과 관련하여) 수직적 억압 및 (외국세력과 관련하여) 수평적 약점에 기인하는 많은 문제 때문에 분단체제를 변화시킬 광범위한 설계가 없어 6월투쟁체제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은 성공하기 힘들다.

    그는 또 2007년의 대선과 관련하여서는 설사 보수파가 승리한다고 하여도 6월투쟁 이후의 민주화 과정이나 6.15선언을 폐기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극단적(또는 변화적) 중도주의’(radical (or transformative) centrism)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극단적”이란 표현의 의미는 현 분단체제를 변화시킬 어떤 극단적 인 것을 말한다. 군사정부시절에는 단순히 평화적 및 자주적 통일운동이나 평등사회 원칙 또는 기본적 인권 운동이 분단체제를 뒤흔들 수 있었으나, 지금은 군사독재가 끝나고 보다 실질적인 운동이 가능해져서, 분단체제를 변화시킨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세력의 다양한 의제를 통합하는 중도주의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한미FTA반대운동과 관련하여서는, 진보적 개혁세력이 상당히 광범위한 연합체를 구성하는데는 성공하였지만 참여정부의 성공적 FTA타결로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FTA비준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므로 이 기간에 대중적 지지를 얻도록 하되, 이번에는 FTA반대라는 단순한 전술적 동맹에서 벗어나 분단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사업을 가지고 대중을 설득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그 그는 ‘제3세력’(third party)로서의 민중운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핵문제가 해결되든 안 되든 북한은 한국의 존재 자체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국가연합이나 낮은단계의 연방제가 정부에 의해 적극적으로 실행될 가능성이 적으므로 제3세력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연방제도 북한 정권 존속의 충분한 보장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백낙청이 비록 공산혁명이니 친북흡수통일이니 하는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체제의 보장과 존속,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한 통일운동을 전개할 것을 선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의 주체가 대한민국이라든가, 북한의 시대착오적 공산군사독재체제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로 흡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든가, 또는 북한 동포의 인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그가 말하는 분단체제의 극복이 한국주도의 통일이 아니라 김정일 체제의 보호 및 한국의 북한체제로의 흡수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잘못 해석하였다면 고쳐주기 바란다. 한국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병리적 현상인 친북좌파들의 통일운동의 실체를 이 연설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또 그런 운동의 배후에 존재하는 이론가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도 조금 해소된 것 같다. 이제 우리도 무조건 이들과 투쟁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이론, 사상, 선동 기법 등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