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남아돌아 누가 안불러 주나 하는 '한물 살짝 간' 분들… 공짜로 나오래도 다 나왔을꺼야" (18일 벤처기업협회 간담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입'이 또 말썽이다. 18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를 방문한 이 전 시장이 벤처기업협회 임원들과 간담회 도중 중견 배우를 비하한 발언을 해 논란꺼리를 제공했다. 불구 낙태발언, 교수 비하발언, 무노조 찬양 발언에 이어 이달 들어 알려진 것만 네번째 설화(舌禍)다.

    벤처기업인을 상대로 한 특강에 앞서 백종진 벤처기업협회 회장, NHN 최휘영 대표, 티켓링크 우성화 대표 등과 환담한 자리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문화산업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는 우 대표의 질문에 백 회장이 대신 "내가 만든 영화 '마파도 2' 시사회에서 이 전 시장을 만나 깜짝 놀랐다"고 답하자, 이 전 시장은 "요즘 젊은 배우들이 뜨는데 그 영화는 '한물 살짝 간' 분들을 불러 만든 영화"라며 입폭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 전 시장은 곧 "요즘 젊은 배우보다 돈은 적게 들였을 것"이라면서 "아이디어가 좋다. 역시 벤처다"며 주변의 동의를 구했다. 배석한 참모진의 얼굴에는 걱정스런 눈빛이 가득했지만, 이 전 시장의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않았다.

    그는 "(마파도 출연진을 가리키며) 시간이 남아돌아 누가 안불러 주나 하는 분들, 단역으로나 나올 분들을 역할을 하나씩 맡기니 얼마나 좋겠냐"며 출연 배우들을 비꼬는 듯한 말을 이어갔다. 농담으로 받아들인 주위의 반응이 좋자 이 전 시장은 "공짜로 나오래도 다 나왔을거야"라며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영화 마파도에는 여운계 김수미 김형자 김을동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견배우들이 출연했다. 이들은 연령, 성별을 넘어 국민적 사랑을 받는 명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저비용 고효율'의 벤처정신을 칭찬하려는 의도였다는 이 전 시장측의 설명이지만, 많은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으며 왕성한 연기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들에 대한 '몰이해'와 '안하무인격' 성격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지배적이다.

    지난 12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낙태 반대 입장을 밝히며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 태어난다든지"라고 말해 시작된 '낙태논란', 또 16일 KBS인터뷰에서 노조를 반대하며 "교수는 일 안해도 봉급이 나오고 출퇴근 시간도 없고" "오케스트라 연주가도 한 달에 한 번 두 번 공연하면 나머진 자유시간 이잖아요"라는 표현으로 인한 '교수, 노조 비하 논란'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스스로 뒷덜미를 챈 꼴이다.

    네티즌들의 비난도 이어졌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onestod'는 "인간을 봤다"며 "이명박 한표 지지를 철회한다"고 했고, 'wjdemsqo'는 "이런 사람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것이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아이디가 'songam2002'인 네티즌은 "사실은 사실이지만, 누구 염장을 질러도 그렇지. 그렇게 정곡으로 질러대면 할매들이 무안하겠다"며 비꼬았다. 네티즌 'dayhat'는 "이명박씨 막말의 진수를 보여줬다"며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비하하려는 마음이 많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 전 시장측 관계자들도 연이은 구설수로 곤혹스럽다. 한 측근 관계자는 "실제 비하할 목적이 아니고 성공한 벤처사업의 실례를 설명하다가 농담삼아 나온 건데..."라며 답답해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마파도 출연진은) 이 전 시장 본인이 시사회에 초청돼 갔을 만큼 애정이 있고 평소 워낙 친한 분들"이라며 "폄하라는 지적과는 거리가 먼 친숙한 표현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지난 주 경선룰 중재안에 대한 '양보 결단'으로 얻은 지지를 다 깎아먹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왔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소속으로 이 전 시장 측근인 정병국 의원은 기자의 상황 설명에 "아이고…. 허 참…"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 의원은 "어찌보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내용이더라도 꼬투리를 잡고 하니…"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전 시장 캠프가 해명하느라 또 바쁘겠다" "이 전 시장의 입을 원망할 수밖에 어쩌겠나" 는 등 오히려 참모진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과거에도 논란을 불러온 이 전 시장의 발언은 셀 수 없을 정도다. "홍문표 도당위원장이 충청도 표가 가는 곳이 이긴다고 언급했다. 나는 되는 곳에 충청표가 따라가서 이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1월 17일, 충남도당신년교례회)" "나처럼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얘기할 자격있고, 고3을 4명 키워봐야 교육을 얘기할 자격 있다(1월 20일, 대전발전정책포럼 창립대회)" "산업시대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그때 뭐했느냐면 빈둥빈둥 놀고 있었던 사람(2월 27일, 바른정책연구원 조찬 세미나)" 등이 대표적이다.

    다른 어떤 정치적 공세보다 이 전 시장이 스스로 내뱉은 말 한마디가 애써 얻은 지지율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특히 이 전 시장의 말실수가 노무현 대통령의 입과 자주 비교되고 있다는 점은 이 전 시장에게 '유쾌하지않은' 상황임이 분명하다. 이 전 시장을 잘 아는 측근 인사도 "평소 농담을 좋아하고, 남을 설득시키기 위해 설명하다 보니 잦은 논란이 생겨 안타깝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초선 의원는 "이렇게까지 막나올 줄 몰랐는데, (이 전 시장은) 쏟아져나오는 말을 (속에) 담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열린우리당 최재성 대변인은 "'경박, 천박, 야박'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이 전 시장"이라면서 "생명을 가벼이 여기고, 인권에 대해서 무시하고, 그리고 문화예술에 대해서 이런 경박한 사고를 보인다면 어찌 한나라당의 지도자로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다는 말이냐"며 이 전 시장의 발언에 즉각 반가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