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되면서 중국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원쟈바오(溫家寶) 중국 국무원 총리는 앞장서서 한중 FTA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한중 FTA 협상 추진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자는 제안도 하였다. 원쟈바오 총리는 한국 방문 중에도 가는 곳마다 한중 FTA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가히 '구애(求愛)'라고 할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왜 이렇게 한중 FTA 추진에 안달인가? 우선 정치적 측면에서 한중 FTA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 핵문제에 대한 2.13 합의에 이어 한미 FTA 타결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장악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중 FTA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활용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FTA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협력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구해 왔다. 그 일환으로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는 2003년에 경제적 실리를 양보하면서까지 FTA에 서명했다. 이어 중국은 2005년 말에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출범 당시 미국을 배제한 채 중국 주도의 동아시아 자유무역협정(EAFTA) 추진을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 이후 한미일 협력 라인에서 이탈하여 친중국 노선을 구사해 오던 한국 정부가 한미 FTA 타결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 복원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가고 있는 상황은 중국에게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의 장애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중국으로 하여금 전략적 차원에서 한국과의 FTA 추진을 서두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한중 FTA는 한미 FTA를 크게 상회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역량은 2006년을 기준으로 1,180억 달러로 미국과의 768억 달러의 1.5배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평균 관세율도 2007년 기준으로 9.8%로 미국의 1.5%에 비해 6.5배나 높은 상황이다. 따라서 한중 FTA가 체결돼 관세가 철폐될 경우 그 경제적 효과는 한미 FTA의 약 10배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이 미국이나 일본과의 FTA를 체결할 경우 중국 사회 전체에 글로벌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큰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한국과 FTA를 체결할 경우 이러한 부담을 덜면서 중국의 능력에 합당한 제도 개혁이 가능한 데다가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확대를 통해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는 데도 결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중국에게는 미국이나 일본과의 FTA보다는 한국과의 FTA가 실익이 클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아시아에서 거대한 중화경제권(中華經濟圈)의 탄생은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이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경제적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폐쇄적 경제 블록이 생길 우려가 크고 이는 이 지역의 군사적 균형에도 영향을 미쳐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의 최대 교역대상국이 2004년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뀐 사실은 미국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환태평양 국가가 모두 참여하는 APEC-wide FTA 구상을 천명했고 그 첫 조치로 한미 FTA를 성사시킨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한미동맹을 단순한 군사동맹에서 포괄적 군사경제동맹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게 되었다.

    즉 미국의 무역경제학 전문가인 자그디시 바그와티 컬럼비아대 교수나 일본의 동아시아 경제 전문가인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대 교수의 지적대로 한미 FTA는 정경분리(政經分離)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특성과는 달리 경제적 역할을 넘어 안보 측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현재 미국이 추구하는 전략적 가치가 안보와 군사 중심에서 경제적 이익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한미동맹의 회복에도 긍정적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보듯이 미국이 한미 FTA를 적극 추진한 배경에는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한국의 친중노선에도 제동을 걸겠다는 미국의 메시지가 숨어 있다. 한미 FTA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작금의 국제사회는 정치와 경제가 별개의 요소가 아니라 복합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한중수교 이후 두 번째로 중국에 대한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호기(好機)를 맞게 되었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 당시 중미관계의 악화와 북미관계의 개선 움직임으로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위축되어 가고 있던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열성을 보이면서 1994년 11월 리펑(李鵬) 중국 국무원 총리의 방한, 1995년 4월 챠오스(喬石)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방한, 1995년 11월 쟝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연이은 방한을 시행한 이후 두 번째로 맞는 호기인 것이다. 당시 우리는 지도층의 무지로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원쟈바오 총리의 발언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중국의 한중 FTA 조속 추진 의향은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향후 한중 FTA 협상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점과 현재 제기되고 있는 현안의 처리에서도 우리의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힘의 원천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미 FTA 타결을 계기로 한미관계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중 FTA 협상을 재촉해 오는 중국에 말려들지 말고 냉정하게 실리를 따지는 협상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 바탕에는 친미포중(親美包中)의 전략이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과 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토대로 중국을 새로운 협력자로 포용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제까지 노무현 정부가 벌여온 반미친중(反美親中) 전략은 버려야 한다. 또 다시 찾아온 호기를 살리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중국이 속국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