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그러고보니 제17대 대통령 선거일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9개월 안쪽이면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목전이나 다를 바 없다. 마음이 급해지고도 남을 시기다. 한나라당의 경우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박근혜 전 당대표 양자 대결구도가 뚜렷해져서인지 후보 도전자가 그리 많지 않다. 이들 외에 원희룡, 고진화 두 의원이 의지를 과시하고 있는 정도다.

    반면 비(非) 혹은 반(反)한나라당 쪽에서는 뚜렷이 선두권을 이룬 사람이 없이 군웅할거의 양상이다. 물론 3명의 주자가 나선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별도로 하고서의 이야기다. 앞으로 한나라당 후보 대항마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치세력권은 몇차례든 재편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결국엔 국민참여경선이나 완전한 국민경선제가 채택될 것이다. 전국적 지명도를 가졌다고 자신하는 인사라면 누구나 욕심을 내볼 만한 상황 및 구도라고 하겠다.

    한나라당 이-박 두 주자 사이의 검증공방에 대해 말하려고 한 것이 샛길로 한참 나가고 말았다. 오래 전부터 제기됐던 ‘검증’ 문제가 합의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엉뚱하게도 ‘한 방’ 논쟁으로 벗나가고 있다. 박 전 대표 캠프에서 “이명박은 결국 한 방이면 날아간다”고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다해서 논란이다. 박 전 대표 캠프의 관계자들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면서 오히려 이 전 시장 측에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네거티브 한 방이면 날아간다.” 통합신당의원모임의 이강래 의원이 한나라당 선두권 두 주자를 겨냥해 한 말이라고 하던데 요즘 정치인들(실은 2002년 대선 이후의 정치인들)의 의식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제대로 된 한 방이면 경쟁상대를 날려버리고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다면 누가 이 강력한 유혹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혹 저마다 도박심리가 발동해서 선거판을 폭로와 흑색선전의 거름구덩이로 만들고 말지나 않을까 지레 걱정이 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 시점에 이런 게 싸움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후보 검증이야 당연한 절차다. 박 전 대표 측이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이 전 시장 측이 볼멘 소리를 하거나 상대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낼 까닭이 없다. 그리고 이 전 시장 측이 어떤 방식의 검증이든 수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터에 박 전 대표 측이 벌써부터 검증에 집착하는 인상을 줄 필요도 없다.

    이-박 어느 쪽도, 그리고 범여권이나 민주노동당의 어느 누구도 대통령감으로서 용인되기 어려운 심대한 하자를 숨겨가며 후보가 되려는 의도는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감추려해봐야 소용이 없다. 인터넷 시대의 검증작업은 범국민적 네트워크에 의해 이뤄진다. 네티즌들의 ‘진실 찾기’ 능력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당연히 정직하지 못한 주자는 네티즌의 ‘단 한 방’에 정말로 날아가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두 주자는 엉뚱한 논쟁으로 힘을 빼지 말고, 지금은 각자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방휼지쟁(蚌鷸之爭)에 어부지리(漁夫之利), 견토지쟁(犬兎之爭)에 전부지공(田夫之功)이라고 했다. 남 좋은 일 해주기 싫으면, 마주서서 상대의 얼굴에 환칠하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다른 예비주자들에게도 똑 같이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모두가 국가의 소중한 인재들인데 서로 싸워 이미지에 심한 흉터를 남길까봐 걱정되어 하는 말이다.

    정말 훌륭한 인재를 뽑는 선거가 되게 하는 데는 국민의 역할도 크다. 유권자의 심지가 굳지 못하면 근거 희박한 폭로, 원색적 비난,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선거가 끝난 후에 아무리 흑백이 새롭게 가려진다고 해도 이미 만사휴의(萬事休矣), 되돌릴 길이 없게 된다. 부도덕한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야! 이래 저래 현명한 주권자되기는 참으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