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신쟝(新疆)위그루자치구에는 실크로드를 연결하는 수많은 오아시스 도시들이 있는데 그 중에 투루판(吐魯番)이라는 도시가 있다. 투루판은 역사적으로 차사전국(車師前國) 시기, 한(漢)과 흉노에 복속된 시기, 고창국(高昌國) 시기로 이어져 오다가 당(唐)에게 멸망한다. 투루판은 황량하고 척박한 환경과는 달리 오랫동안 오아시스 도시로 명맥을 유지하여 고대도시 유적, 불교와 이슬람 유적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유적이 있다.

    그 중에서 고대도시 유적인 교하고성(交河故城)은 30m 높이의 절벽 위에 위치한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중요한 군사기지 역할을 하였다. 특히 과거 차사전국의 수도였던 교하고성을 정벌한 당은 이곳에 도독부를 설치하고 둔전병을 두어 서역을 통치하는 군사기지로 삼았다. 따라서 교하고성은 당의 수도인 장안(長安)에서 황량한 고비사막을 건너 만리 밖의 변방에 파견된 병사들의 고통과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당의 유명한 전쟁시인 이기(李頎, 690∼751)는 고종군행(古從軍行)에서 병사들의 고통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백일등산망봉화(白日登山望烽火) 낮에는 산에 올라 봉화를 바라보고
    황혼음마방교하(黃昏飮馬傍交河) 황혼에는 교하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네
    행인조두풍사암(行人刁斗風沙暗) 진중의 순라 소리 모래바람 속에 침울하고
    공주비파유원다(公主琵琶幽怨多) 공주의 비파소리에는 원한이 서려있네
    야영만리무성곽(野營萬里無城郭) 야영하는 만리에는 성곽도 하나 없는데
    우설분분연대막(雨雪紛紛連大漠) 눈비만 분분하게 사막에 연이었네
    호안애명야야비(胡雁哀鳴夜夜飛) 북쪽의 기러기 슬피 울며 밤마다 날면
    호아안루쌍쌍락(胡兒眼淚雙雙落) 오랑캐 아이의 눈물은 두 줄기로 흐르네
    문도옥문유피차(聞道玉門猶被遮) 소문에는 옥문관이 아직도 막혀 있다는데
    응장성명축경차(應將性命逐輕車) 병사들은 목숨 걸고 전쟁을 해야겠지
    년년전골매황외(年年戰骨埋荒外) 해마다 병사들의 뼈는 사막에 묻히는데
    공견포도입한가(空見蒲桃入漢家) 포도만 부질없이 한나라도 들어오네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다. 그러나 그 평화는 항상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국방력을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처한 대내외적 상황에 적절히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 국방력은 재정 부담과 인력 손실이 수반되더라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으로부터의 위협이 조금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비병력을 68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방 개혁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더해 노무현 정부는 내년 대선에서 좌파정권 재창출을 위해 우리나라의 국방력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국가안보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마저 소멸시킬 수 있는 시나리오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한 야당 의원을 통해 제기되었다. 내년 3∼4월경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남북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고조시키고 이를 통해 선거판을 전쟁세력과 평화세력의 대결로 유도하고 그 여세를 몰아 현행의 징병제(徵兵制)를 모병제(募兵制)로 전환하는 내용을 대선공약(大選公約)으로 제시하려 한다는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남북관계를 고리로 하는 대선전략 추진 가능성과 징병제의 모병제 전환 가능성에 대해 필자도 이미 뉴데일리 칼럼에서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여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자체가 내년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이미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평화협정으로 인한 영향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남북정상회담과 평화협정 체결에만 주력할 경우 파괴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남북정상회담이나 평화협정 자체가 아니라 이를 통해 파생될 극단적인 상황의 전개이다.

    다시 말해 평화협정 체결을 계기로 좌파세력이 지원하는 대통령 후보가 모병제를 대선공약으로 들고 나온다면 이는 대선 판세를 완전히 뒤집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노무현 정권이 추진 중인 남북관계를 고리로 하는 각종 시나리오들에 대한 경각심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평화 분위기가 극대화되어 대선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모병제의 실현 여부를 떠나 130만 명에 달하는 입영 대상(19∼22세) 젊은 층과 가족을 포함하는 수백만 유권자의 표가 좌파후보에게로 이동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한다는 것은 현재의 대내외적 상황에 비추어 대단히 무모한 포퓰리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상황적 측면에서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간 군사력 균형은 일거에 북한 우위로 변화되고 말았으며 중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주변국들의 군사력 팽창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어 우리나라에 대한 위협 요인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합의에 따른 미군의 역할 축소로 우리나라의 국방력은 더욱 저하되고 있다. 제도적 측면에서 1996년 이후 모병제로 전환한 프랑스의 선례를 보면 재정 악화, 전투력 약화 등과 같은 각종 문제점이 속출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모병제의 도입은 시기상조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좌파후보의 모병제 공약이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 이는 완전히 국가안보를 도외시하고 오로지 대선 승리만을 위한 대국민 사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 경우 북한과 주변국의 위협에 벌거벗은 상태로 노출될 것이 뻔한 우리나라의 앞날은 누가 보장할 것인가? 대선 승리를 통한 정권 재창출이라는 목적을 위해 국가의 흥망과 국민의 생사를 담보로 표를 구걸하려는 인간들에게 국민들은 더 이상 속아넘어갈 것인가? 국민들은 국가와 국민의 안전 보장을 위한 국방의 의무보다 고종군행이라는 시의 내용처럼 인간적인 감상에 사로잡힐 것인가? 그렇다면 더 이상 국민으로서 자격도 없다. 노무현 좌파정권도 문제지만 국민이 먼저 정신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