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0일 사설 '청와대 안의 한가하고 무서운 얘기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대통령 은퇴문화에 대한 외국의 사례를 모아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며 “은퇴문화를 새롭게 모색한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이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국민은 삭풍이 부는 들판에 서 있는데, 청와대 안에서는 한가한 얘기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 베이징에선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6자회담이 진행 중이다. 북(北)은 핵폭탄을 손에 들고 스스로 ‘위풍당당’을 호언하고 있고, 북에 종합선물세트를 내밀었던 미(美)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토로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0~70%가 안보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나라 안에선 부동산 폭등, 금리 인상, 가계 부채, 성장률 저하, 원고(高), 노사 분규, 취업난 등 국민 생활을 위협하는 파고(波高)가 언제라도 민가(民家)를 덮칠 듯 방파제 위를 넘실거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집권당은 하루도 쉬지 않고 피 터지는 집안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런 난국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만들었거나 방향을 잘못 잡아 일을 덧나게 한 대통령이 이제 자신이 퇴임한 후 만들어 갈 신(新)은퇴문화를 모색 중이라는 것이다. 사력을 다해 전력 질주를 해도 모자랄 마라톤 선수가 결승점을 5분의 1이나 넘게 남겨놓은 지점에서 벌써 뛰기를 포기하고 경기 끝난 후에 자기 일 벌일 얘기나 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이 정치 언론운동 한다, 당 고문 하겠다, 어디 가서 살겠다는 등 ‘퇴임 후’ 얘기를 한 게 이번으로 보도된 것만 6차례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대선 4주년 기념행사를 연 대통령 고향 마을의 주민들도 “남은 1년이라도 잘 해서 국민들 마음을 풀어줘야 한다” “남은 1년을 각별히 잘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4800만 국민의 마음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노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며 “우리 정치문화에선 당대에 성공한 대통령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퇴임 후를 들먹이면서 국민들에겐 박수 받을 생각도 없다는 말에 섬뜩함마저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