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시민운동의 위기와 기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 정부 이래, 특히 노무현 정부 들어 ‘참여정치’가 특별히 강조됐다. 노 대통령이 후보적부터 내걸었던 슬로건, ‘국민이 대통령입니다’가 바로 참여정치의 한 표현이었을 터다. 물론 이는 ‘주권자 격하’라는 이미지를 준 바람에 일찌감치 퇴색·퇴조하고 말았다. 하긴 노 대통령이 국민에게 행세해볼 틈을 주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치’는 적극적으로 추구되고 진전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 주역은 시민단체였다.

    이들이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어젠다를 설정하고 과제화하고 추진했을 뿐 아니라 결과까지 산출해내는 능력을 보였다. 그 덕에 이를테면 ‘시민단체 만능’의 분위기가 한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그 힘은 시민운동 리더들의 견인력에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1980년대의 운동권 활동가들이라고 알려졌다. 당연히 조직의 베테랑들이고 거기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데 전문가들이었다. 게다가 많은 경우 진보적 혹은 좌파적 의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었으므로 대단히 투쟁적이고 웅변적이었다. 기실 참여정치의 요구 자체가 1960년대 구미(歐美) 신좌파의 슬로건이자 요구이기도 했다.

    당시(불과 수년 전이지만) 시민단체들의 기세를 보면서 머리에 떠올렸던 것이 제정러시아 때의 나로드니키 운동이었다. 그 운동의 내용이 아니라 ‘브 나로드(V narod)’ 즉 ‘인민 속으로’라는 나로드니키의 캐치프레이즈를 환청으로 들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때의 ‘인민’은 곧 ‘농민’이었고 ‘브 나로드!’는 ‘농민 속으로!’와 같은 의미였다. 21세기 산업국가 한국의 시민운동가들 구호로 바꾼다면 아마도 ‘시민 속으로!’가 될 것이다. 운동권 리더들은 한국정치의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를 맞아 일제히 시민 속으로 뛰어들었다. 거기서 추동력을 만들어내고,단체의 이름과 설립취지 여하간에 대다수가 ‘시민의 힘’을 배경으로 정치세력화했다. 그게 근 십년 동안 정치 지형과 정치권 진입의 큰 흐름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들은 시민 속에서 나로드니키(인민주의자)와 같은 난관에 부닥쳤다. 부분적으로는 그렇지도 않았지만 대체로 시민들의 참여율은 아주 낮았다. 역시 나로드니키가 그랬던 것처럼 상당수 시민단체의 리더들은 과격해졌다. 사회적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이들은 물리적 방식을 앞세운 정치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시민의 참여 없는 시민단체에서 실질적 활동가는 리더 몇 명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여기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던 19세기의 러시아가 아니다. 시민단체들은 정치운동, 정치적 입신을 위한 시민운동이 한계에 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같은 말이 되지만 시민운동이 정부의 일정한 부조 아니면 전적인 부양 아래 정치적 이슈에만 골몰하면 생명력이 길 수 없다. 시민을 정치적 도약대로 삼는 일도 이젠 극히 어렵게 됐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지금이야말로 명실상부하고 순수한 시민운동으로서 거듭나는 계기일 수 있다.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의 말이라며 몇몇 신문에 실린 기사를 핑계 삼아 쓰는 글이다. 그는 엊그제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시민운동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말하는 가운데 “시민운동 방식의 진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시민운동은 시민에 뒤처져 있다”는 등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일이 잘되어 가는 중에도 일신 일일신 우일신(日新 日日新 又日新)의 자세가 소망스러운데, 리더 중심의 ‘관성적’ 시민운동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야 당연한 자세라 하겠다. 정체성과 목표를 분명히 하는 단체, 회원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함께 이끌어가는 시민의 동아리가 되도록 분발할 때다. 시쳇말로 추장(酋長)뿐인 집단은 머리 무게 때문에 주저앉고 만다. 괜히 어깨를 으쓱거리며 정치권 안팎을 휘젓고 다니는 운동권 리더가 안 보이게 되는 날이 곧 시민운동 정착의 날이 될 것 같아서 하는 훈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