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2일 칼럼 <대한민국 생일날 ‘통합주의’ 경축사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과 진통의 뿌리는 청와대 실세들의 수정주의적 역사관(歷史觀)에 있다는 것이 ‘노무현 광복절 경축사’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스스로 ‘좌파 실용주의’임을 밝혔던 노무현 진영의 그런 편견이 일종의 유사종교처럼 굳어진 이상에는, 그 ‘미신’을 타파할 길은 정면대결과 권력 회수밖엔 없게 되었다.

    ‘노무현 경축사’에서 드러난 좌파 권력측 역사관의 기둥은 두 가지다. “해방 후 정부수립 과정에서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자 했던 통합주의 노선은 좌절하고 말았습니다”가 그 하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 역량을 일깨워 분열을 막고자 했던 노력은 다시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한 대목이다. 해몽하자면, 대한민국 수립과 궤를 달리했던 ‘중간파’의 좌우합작, 평양 남북협상, 그리고 그 밖의 ‘통일전선’ 흐름에 상당한 정당성을 부여한 발언이었다.

    당시 ‘중도주의자’들의 충정이야 여하튼, 이미 해방 직후 9월부터 38선 이북에는 소련 점령군의 일사불란한 지령하에 ‘인민위원회’라는 혁명정권이 수립되어 공산당 1당 독재가 무자비하게 전개된 마당에 ‘노무현식 통합주의’ 운운이 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부르주아 민주정치와 사회주의 경제를 절충하자던 중간파의 이상론은 남쪽의 우익은 고사하고 우선 스탈린, 김일성, 박헌영의 볼셰비키 혁명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48년의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라는 것도 결국은 한 편의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불가능한 절충론’을 반세기 만에 재생산한 것이 바로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南)의 연합제에 공통점이 있다’고 한 김정일-김대중의 자의적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한미동맹 약화와 대한민국 무장해제라는 역효과만 불러왔을 따름이다. 문제는 이런 ‘트로이의 목마’들이 항상 ‘민족주의’ ‘우리민족끼리’ ‘자주’ ‘반패권주의’ ‘빼앗긴 전시작통권 환수’ 운운하는 거창한 수사학으로 대중을 현혹시킨다는 점이다.

    386 친북파 등이 내년 대선에서 제3기 좌파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써먹으려는 승부수도 아마 “자주, 민족주의냐”, “친미-친일 사대주의냐”의 조작적 선동술일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지지’는 바닥인데도 작통권 ‘환수’ 찬성은 51%라는 어느 여론조사도 있었다. 이게 대중사회라는 것의 ‘종잡을 수 없음’이다. ‘전시작통권’이 어떻게 작동하게 돼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국 대통령은 자기 군대조차 마음대로 지휘할 수 없다”는 거짓 선동만 했다 하면 일단 “이럴 수가…” 하고 분기탱천해 놓고 보는 것이 일부 대중의 ‘정서적 민족주의’인 것이다.

    이 ‘정서적 민족주의’ 부추기기를 제압하지 못하면, 그리고 야당 대권주자라는 사람들이 이런 물결에 주눅이 들어 계속 입 다물고 몸보신이나 하고 있을수록, 그리고 더 나아가 선거 때 일본 극우파가 독도 해상에 배라도 한 척 띄운다거나 미군 병사가 또 무슨 사고라도 쳐 준다면, 3기 좌파정권 출현은 95% 확실할 것이다.

    이런 좌파 시나리오에 대한민국 세력은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한마디로 자유주의, 보수주의, 심지어는 그동안 NL 주사파의 망나니 짓에 질릴 만큼 질렸을 ‘합리적 진보’까지도 이제부터야말로 ‘김정일-노무현식 자주’ 운운의 반동성에 대해 단호한 공격전을 결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저들의 ‘황폐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20대 실업’, ‘40대 실직’ ‘세계 100등에도 못 낀 한국 대학’을 개선하고, ‘과격노조의 행패’ ‘전교조의 의식화’ ‘반기업’ ‘세금 늘려 김정일-친북단체 지원하기’ ‘집권측의 막가파 언행’ ‘제멋대로 인사’ ‘방만한 재정운영’을 척결하는 것임을 재천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닫힌 민족주의냐, 열린 민족전략이냐”를 이 시대 한반도 ‘문명충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