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이 마침내 당무복귀를 결정하기는 했지만 한 때 '최고위원직 사퇴'까지 고려했던 것은 영 뒷 맛이 개운치 않다.

    대표경선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색깔론' 시비가 일어난 것과 관련해 내심 강재섭 대표가 공식사과를 해주길 희망했지만 유감 표명을 하는 데 그치자 당무복귀로 선뜻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 최고위원은 지난 15일 연합통신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우파대연합'을 이룰 수 없다. 내가 수구보수 지도부에 있으면 우파대연합을 이룰 수 없지 않느냐"며 최고위원직 사퇴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구성된 지도부의 모습을 '수구보수'로 단정했다. "한나라당이 현재 갖고 있는 정체성으로는 결코 집권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대표경선 과정을 통해 받은 이 최고위원의 상처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10년을 함께 한 동료의원에게 '색깔'을 덧칠하고 당 사무총장에 원내대표까지 한 자신을 '빨갱이'로 몰아갔으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박근혜 전 대표측의 주장대로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더라도 6개월 간 허리를 굽혀 받들었던 박 전 대표가 당락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신의 연설도중 자리를 이동해 연설효과를 반감시킨 것에 대한 배신감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이 최고위원의 '당무 보이콧'은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최고위원직 사퇴시사 발언은 더더욱 그러했다. 무엇보다 새롭게 구성된 지도부를 '수구보수'로 규정한 것은 매우 신중치 못한 발언이다. 당초 한나라당의 지도부에 입성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의원들 다수가 '보수색'이 짙은 인사들 뿐이었다.

    8명의 후보들 중 개혁성향 인사로 분류할 수 있는 후보는 이 최고위원과 권영세 의원 정도다. 나머지 6명은 본인 자신을 '보수'라고 자임하는 인사들 혹은 보수 이미지가 강하다는 평을 받는 인사들이다. 지금과 다른 지도부가 구성됐다 해도 한나라당 새 지도부의 색채는 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보수 이미지'를 띄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런 수구보수 지도부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이 최고위원의 주장은 그가 받았을 상처의 깊이에도 불구하고 선뜻 와 닿지 않는다. 자신이 대표가 되어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식의 논리에서는 또 다른 오만과 독선을 보는 것 같아 씁스레 하다. 

    이 최고위원은 '강한 대표'를 내세워 당 대표 경선에 도전했다. 야당성이 강하고 대여투쟁 능력이 뛰어난 자신이 앞으로 있을 여권의 정치공세와 공작에 맞설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지금 이 최고위원은 2007년 정권창출을 위한 대여투쟁은 고사하고 당의 변화를 위한 투쟁조차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최악의 물난리를 틈 타 당무 복귀를 결정했지만 이 최고위원의 이번 '몽니'를 바라보는 당내외의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이 최고위원은 선암사에서 많은 참선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이 참선의 시간에 자신의 이번 행동에 대한 성찰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