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5일자 오피니어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새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오기 정치’ ‘회전문 인사’ ‘코드 인사’ ‘역발상’ ‘노의 남자(혹은 코드맨) 전진배치’…. 언론의 표현들이 참으로 다양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교육부총리에 김병준 전 대통령 정책실장을 기용한 데 대한 신문들의 평가다. 야3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 일각에서까지 반대·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노 대통령은 ‘김 부총리’를 밀어붙였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임기가 1년 반 조금 더 남았다. 실질적으로 국정 장악력 및 견인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은 그보다 훨씬 짧을 것이다. 내년에 들어서기 무섭게 정치권의 무게 중심은 (예비)차기 주자들쪽으로 옮겨갈 게 뻔하다. 그러기 전에 참여정부 5년의 역사적 성격과 그 업적을 분명히 정리하고 개혁정책 제도화의 기틀을 굳힐 필요가 있다.

    그 점에서 김 교육부총리 내정자는 제격이라 할만하다. 참여정부 개혁정책의 고집스런 길라잡이로 인식되어 왔다니까 하는 말이다. 강남 부동산과의 전쟁에서 용맹을 뽐낸 김 내정자인 만큼 교육개혁 작업의 마무리에도 그 역량을 마음껏 구사해 주기를 기대했을 법하다. 경제부총리로 권오규 정책실장을 내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겠다.

    그렇다해도 이번 개각은 정말이지 ‘별로’다. 측근 몇 사람 외에는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을 갖지 못한 인상을 주는 게 우선 안타깝다. 게다가 여론이 반대일색임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오불관언, 초지를 관철시켰다. 자주 그런 느낌을 받지만 이야말로 여론과의 대결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부의 정책 역시 물이 흐르듯 민심의 순리를 따라 들어가야 합니다. 국민들이 호응하느냐, 더 나아가 주도적으로 나서주느냐 하는 것은 정책의 성패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노 대통령의 지적이다(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쓴 책으로 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섰을 때 출판했다. 국가경영의 포부와 구상,그리고 의지를 밝힌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후엔 ‘물 흐르듯’ 하는 리더십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던 듯하다. ‘투쟁으로 점철된 3년 반’이었다 해서 지나치다 하지는 못할 것이다.

    취임 초기가 지나면서 떨어지기 시작한 여론의 지지도는 지지난해 탄핵정국 속에서 반등하기 시작, 4·15총선 후 한동안 50%를 상회했으나 그 이후 다시 지루한 정체-하락국면에 놓여 있다. 지난달 1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발표한 정기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은 18.2%로 나타났다. 말 그대로 ‘목불인견’이다.

    민주적 정치리더십이란 민심을 존중하는 가운데 공동선을 추구해가는 지도방법과 지도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국민의 호응이 ‘정책의 성패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지금 국민은 노 대통령의 정책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그 정책의 결말은 뻔하지 않은가.

    여론을 ‘일시적인 국민정서’로 파악한 인사가 있다. 어떤 이는 “여론이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한 논란이 거세게 일었을 때 일이지만, 한 고위인사는 “국회의 결정(특별법)과 국민 여론이 등가적인 것은 아니다. 국회 결정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고 기염을 토해 눈길을 끌었다(탄핵 소추 후의 정부 여당측 논리와 어쩌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었다는 것인가!). 다들 노 대통령의 지근 거리에 있거나, 있었던 유명인이다.

    리더가 자신의 소신을 민심의 상위에 두는 식의 정치는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국민이 선거나 여론조사를 통해 분명히 뜻을 밝혀왔는데도 국정 최고책임자가 못듣고 못본 양 해서는 도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개인의 철학이나 꿈을 구현해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에게 안도와 보람을 안겨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직책일 것이다. 이게 무지의 소치 혹은 어림없는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