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슨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는 '분열의 극복을 통한 국민 통합'을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뜻으로 씌어진 듯하다. 여전히 군데군데 삐죽삐죽 내민 가시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화해 지향적인, 그리고 시쳇말로 ‘절제된’ 연설이라 할 만하다. 5·31 지방선거 참패에 이런저런 구설까지 겹친 탓에 더 조심하고자 했을까.

    “이제 이 같은 불행한 역사를 마감해야 합니다. 분열을 끝내고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상대와 상대의 권리를 존중하고 의견과 이해관계의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화로 설득하고 양보로 타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끝내 합의를 이룰 수 없는 경우라도 상대를 배제하거나 타도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규칙에 따라 결론을 내고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독선과 아집,그리고 배제와 타도는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역사발전의 장애물입니다.”

    지방선거 투표를 통해서 국민이 정권 측에 말하고자 했던 바 또한 다르지 않을 터이다. 그런 점에선 국민이 대통령과 그 참모들, 그리고 집권당의 지도부에 보내고 싶었던 메시지를 거꾸로 노 대통령의 연설을 통해 들은 셈이 됐다. 진작 노 대통령과 여당의 유력자들이 상대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했더라면 정치적 갈등·대립과 그로 인한 국민의 피로감은 훨씬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연설문이 권유형 명령형의 문장들로 이뤄진 점도 거북스럽다. 정치인이나 사회의 책임있는 리더들을 상대로 한 연설이었다면 또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날의 연설은 온 국민을, 그 가운데서도,노 대통령 자신이 적시한 대로 ‘국가 유공자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했다. 당연히 국가 최고위 공직자로서, 또 정치 리더로서 책임을 통감하는 표현을 할 일이었다.

    우리의 과거를 ‘불행하고 부끄러운 역사’로 규정한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어깨펴고 살게 된 것이 불행하기만 했던 역사의 산물이겠는가. 물질적 성공 따위는 ‘역사의 발전’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면 모르겠거니와 그런 의미가 아니라면 역사에 대한 ‘대통령의 단정적 평가와 훈계’는 위험할 수 있다. 정당성 정통성 다툼을 대통령이 주도하는 한 진정한 정치평화, 성숙한 민주주의는 기대할 바 못된다.

    내친 김에 이 말도 해버리자. 노 대통령은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처럼 분명하게 평가하면서도 유독 6·25에 관해서는 얼버무려 넘기고 있다. ‘동서 대립의 국제질서’에만 책임을 떠넘겨 6·25가 설명될 수 있다고 정말 믿는지 의아하고 궁금하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민족정기와 자주독립, 통일을 외쳤지만 서로 배제하고 용납하지 못한 채 목숨까지 걸고 싸웠다”는 것은 ‘남북 공동책임론’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민족 공조’가 강조되는 시대이기로 전쟁의 책임까지 나눠질 일이겠는가. 따질 것은 따지고 기억할 것은 기억해야 한다. 어느 새 전쟁의 책임소재를 잊어버릴 만큼 세월이 흐르고 말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탓인가.

    노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리더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국민을 가르치려는 열정이 아니라 진지한 자성이라고 본다. ‘독선과 아집, 배제와 타도’야말로 현 정권의 이미지가 아니던가. 마땅히 정권 스스로 자책하고 극복해나가야 할 문제들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적’이라면 더더욱 정권의 책임있는 인사들은 냉정하게 자신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집권당이 지방선거에서 국민으로부터 거의 전면적인 거부를 당했는데도 아직 노 대통령은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가 없다. 그 까닭을 추념사에서 들었다고 하면 엉뚱하다 할 것인가. 선악(善惡), 정오(正誤) 판단의 기준과 판정권이 노 대통령에게 독점된 것 같은 인상을 털어내기 어렵다. 혹 대통령 자신이 정당간 경쟁의 심판관이라고 여기는 것이나 아닐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국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