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노 대통령은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양극화 해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선진한국으로 가는 양 날개”라며 참여정부는 “좌파신자유주의”라고 말했다. 양극화는 좌파의 시각이고 FTA는 (신)자유주의 시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놓고 정체성 논란이 분분하다. 문제는 FTA의 바탕이 되고 있는 세계관이 노 정권이 말하는 대로 자유주의 세계관인가의 문제이다.

    자유무역 협정은 다자 또는 쌍방간에 협상을 통하여 자유무역을 실현하려는 취지가 있다. 그래서 이런 취지를 협상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협상 패러다임은 자유주의가 의미하는 무역관(貿易觀)과 다른 무역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무역에 관한 자유주의의 관점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수입도 중요하고 수출도 중요하다. 그래서 자국의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유익하다. 쌍방 또는 다자가 모두 자국의 시장을 전부 개방하는 경우 그들 모두가 번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두 나라 가운데 한 나라의 문이 활짝 열려있고 다른 나라는 보호주의를 통해 수입을 막는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시장을 개방한 나라가 유익하다. 이것이 자유무역의 묘미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도 입증될 뿐만이 아니다. 북미(北美)경제와 남미(南美)경제의 비교사(比較史)가 또렷이 입증한다. 수입대체산업 모델을 지향했던 남미의 경제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일방적인 자유무역을 택한 북미는 성공한 대표적 사례이다. 일방적으로 시장을 개방한다고 해도 결코 피해보는 것이 아니라 개방의 편익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자유무역의 묘미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다른 나라들이 어떤 무역정책을 취하든 관계없이 자신의 시장을 개방하는 나라는 번영한다는 것이다. 수출뿐만 아니라 수입도 좋다는 것이다. 수출 그 자체는 목적도 아니다. 수출의 궁극적 목적은 수입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무역관(貿易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나라들이 다른 나라와 사전에 협상과 합의를 통하여 자국시장을 개방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무역정책에 관계없이, 대부분 묵시적으로(때로는 명시적으로) 문을 열고 자국의 이익을 도모했던 것이다. 영국,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등이 수입대체모델 대신에 과감히 글로벌경제에 통합했다. 일본, 싱가포르의 시장개방도 대부분 일방적이었다. 중국의 개방도 무역협상의 결과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중국정부의 일방적인 개방 정책의 결과이다. 이것이 자유무역의 역사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별도로 체결할 필요가 없다. 자유무역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문만 열면 된다. 서비스 산업의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우리의 서비스 산업에 발전이 되기 때문에 미국에 대하여 또는 세계시장에 대하여 문을 열면 그만이다. 다자간 또는 쌍방간 협정이 필요하지 않다.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금전적, 인적 비용 등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 우리가 일일이 다른 나라와 그 지루한 협상을 통하여 문호를 개방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협상을 통해 국제적인 통상관계를 가지려고 하는가? 자유무역에 대하여 협상패러다임은 자유주의와는 전적으로 다른 관점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에 대한 협상패러다임의 관점 

    협상패러다임의 관점은 수출은 좋은 것이고 수입은 나쁜 것이라는 관점이다. 수출은 많아야 하고 수입은 적어야 국익이라는 것이다. 17~18세기에 형성되었던 중상주의 관점이다. 이런 관점은 국제사회는 물론 시장경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보는 홉스(Th. Hobbes)의 세계관, 제로-섬-게임 세계관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는 이런 세계관으로부터 반 자유주의적 무역 정책을 옹호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념사적으로 보면 이런 중상주의 세계관 대부분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마르크스주의 좌파사상이라는 것이다. 자유시장을 아프리카 밀림의 약육강식으로 보는 청와대의 관점, 시장경제의 양극화 개념도 이런 무역관이 전제하고 있는 세계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무역관을 좌파의 무역관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지금까지 체결한 무역협상 과정을 보면 이런 반 자유주의적 무역관이 또렷이 드러난다. 협상과정에서 자국의 시장개방을 “양보”라고 부르고 타국의 시장개방을 “이득”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수입은 나쁘고 수출은 좋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협상참여국들은 자신들의 시장개방(양보)은 적게 하고 상대방 국가들의 시장개방(이득)은 크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러나 자유주의 무역관에 따르면 자국시장의 개방도 이득이고 타국시장의 개방도 이득이다. 자유주의 세계에서는 협상은 그래서 필요가 없다. 자유무역이 이익이 있다고 판단하면 자국의 시장을 열기만 하면 된다. 이미 열려 있으면 그대로 이를 묵인하거나 선언하기만 하면 된다. 타국이 열지 않았으면 열도록 설득하면 된다. 설득이 안 된다고 해서 보복으로 자국 시장을 닫을 필요는 없다. 닫으면 그만큼 손해이기 때문이다..

    국제무역에 대한 노 정권의 입장은 좌파적 

    낙관적인 반 자유주의는 개방하면 수출의 비중이 수입의 비중보다 크다고 믿는다. 그래서 무역 자유화의 협상을 기꺼이 준비하고 협상에 들어가려고 한다. 이에 반하여 비관주의는 문을 열어서 수출이 주는 편익보다 수입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에 협상자체를 반대하고 현상유지 또는 보호주의를 주장한다.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공통점은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쁘다는 입장이다.

    노무현 정권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 정권은 결코 (신)자유주의는 아니다. 자유주의라면 협상이 필요 없이 한국시장의 문을 활짝 열어 제 칠 것이다. 그러나 협상을, 그것도 노 대통령이 작년 유엔연설에서 “제국주의”라고 비난했던 미국과 협상을 하려고 한다. 따라서 노 정권은 낙관적인 좌파이다. 비관적인 좌파라면 보호주의를 택했거나 아니면 현상유지를 고수했을 것이다. 미국과의 FTA 협상도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일각에서는 한․미 FTA 협상 추진을 미국으로부터 남북한문제와 관련된-2007년 대선 전략을 위해- 모종의 양해를 얻어내기 위한 노 정권의 전략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주장의 진위를 파악할 입장에 있지 않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노 정권은 결코 자유주의가 아니라 반 (反)자유주의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상주의자라고 부르든 좌파라고 부르든, 그것은 독자들의 자유이다. 그러나 노 정권의 이념적 일관성을 위해서는 좌파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자는 무역협정을 요구할 일이 아니다

    자유무역협정이라는 개념이 잘못된 개념이다. 자유무역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분석한다면 자유무역을 위해서 국가간 협정이 불필요하다. 그런 개념이 나온 것은 자유무역에 대한 좌파적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좌파적 오해를 자유주의자들도 사실인양 받아들여 아무런 성찰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 철저히 좌파정부도 자유무역 협정을 마치 자유주의인양 사용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는 정부에게 미국이나 또는 일본 등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 협정을 신속히 체결할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타국과는 관계없이 우리나라의 시장을 개방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자유주의 입장이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