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에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민은행 자료에 따르면 10월까지 전반적으로 안정되던 주택가격이 11월 들어 반등했다. 서울의 월간 가격상승률 0.2%는 높다고 할 수 없는 수치이지만, 강남지역이 서울 평균을 앞지르는 현상이 다시 나타났고, 특히 재건축 아파트 가격상승이 두드러지는 것이 주목된다. 전세가도 크게 올랐다. 이러한 시장동향은 8.31 대책이 시장의 힘을 거스르기에 역부족이었음을 말해준다. 다른 한편, 정부의 초강경 대책에도 불구하고 가격 폭락 사태가 없었던 것은 주택가격에 거품이 없었음을 방증한다.

    한편 국회에선 8.31 대책 입법조치를 둘러싸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만약 정부.여당의 원안이 통과된다면, 내년이면 강남에 중형아파트 한 채 가진 사람들도 대부분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는다. 이렇게 부동산에 관련된 세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고, 정부가 언뜻언뜻 비치는 초강경 조치들까지 동원된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주택문제가 단순히 가격의 문제라면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인 부작용이 클 수 있다. 세금이 오르면 소유자가 가져가는 순임대료가 줄어들고 따라서 부동산의 내재가치가 낮아진다. 거래가격은 가치에 수렴하게 마련이므로, 세 부담 증가는 가격의 하락을 가져올 것이다. 주식 배당금이나 채권 이자에 붙는 세금을 높이면 주식이나 채권가격이 떨어질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가격 하락 자체가 정책목표일 수 없으며, 주택에 대한 중과세는 중장기적으로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가격 하락을 도모하는 이유는 국민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고자 하기 때문인데, 집을 싸게 사더라도 그 이후 세금을 많이 낸다면 주거비 부담은 별로 낮아지지 않는다. 중장기적으로는 주택 수요의 감소와 가격 하락이 주택 공급을 위축시킨다. 1998년 이후 3년간 주택공급이 부족했던 것이 그 후 가격 급등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었음을 상기하면 앞으로의 상황이 걱정된다.

    정부는 한 가구가 집 한 채씩만 가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큰 착각이다. 여분의 집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 임대주택 시장의 주공급자다. 이들이 모두 집을 팔면 때맞추어 목돈을 가지지 못한 서민들은 누구로부터 집을 임차할 수 있을까? 실제로 10.29 대책 1년 후 강남 아파트보다는 지방과 서울 변두리의 다세대·다가구주택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많은 수가 경매물건으로 넘어갔다. 주택정책은 어설픈 중산층에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또 정부가 던지는 선심성 대책들은 시장에 큰 혼란을 준다. 예를 들어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지원은 연소득 5000만원의 고소득자에게까지 정책금리로 대출을 주므로 가까스로 정착되던 장기 모기지론 시장을 기초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이처럼 주택정책은 큰 효과 없이 의도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파생시키고 있다. 여러 대책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정책담당자들이 이념과 편견, 편가르기 습성을 벗어던져야 한다. 국민의 2%만이 종합부동산세 대상이라는 것이 세제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다. 이 2%가 주택문제를 일으킨 범죄자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소득과 자산, 개성과 희망이 녹아들어 움직여가는 주택시장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서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설은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정부의 역할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평당 1500만원 이상을 주고라도 좋은 집, 좋은 동네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수요를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주택이 자산이며, 자산 증식의 수단이 아닐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시장이 원활히 움직이도록 애로를 해소해주면 된다. 강남 집값이 어찌 움직이든 제발 또 다른 특단의 대책으로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