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김대중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황우석과 MBC PD수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이상한 현상을 목도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좌파 매체와 좌파 성향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MBC PD수첩의 보도를 옹호하거나 더 나아가 ‘황우석 깎아내리기’에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한겨레신문은 MBC의 사과가 있기 전 “PD수첩의 보도 내용은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며 PD수첩에 대한 비판을 ‘마녀사냥식 공격’으로 못박고 황 교수팀에 대한 문제 제기를 ‘매국(賣國)’ 행위로 몰아간다고 비판했다. 이것을 보고 ‘반가운 기사’라며 “막상 MBC 보도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고 댓글을 단 노무현 대통령도 같은 줄에 섰다. 

    오마이뉴스의 한 기자는 “그동안 은폐를 위해 거짓말을 거듭해야 했던 황 박사”를 비난하면서 “아직도 철저하게 개발독재 논리에 젖어 있는 우리는 진정 민주화되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번 사태를 ‘광신적 민족주의’와 ‘결과 만능주의’의 결합이라고 극언한 기사도 있다. 민노당의 한 간부는 “PD수첩은 잘못한 것이 없고 시의적절한 프로였다”며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을 ‘양계장의 닭’에 비유했다.

    서프라이즈도, 프레시안도 황 교수팀의 연구 업적을 비난하며 PD수첩을 옹호했다. 지난 1일 열린, 민언련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도 ‘국익을 내세워 진실에 침묵하는 기이한 현상’ ‘기자정신의 패러다임마저도 변질’ ‘PD수첩의 보도는 지극히 정당했고 뒤늦게나마 윤리 문제를 제대로 보도’ 등 PD수첩 옹호로 일관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대다수 ‘보통사람들’은 당혹스러워했다―“도대체 MBC가 저렇게 황 교수를 깎아내려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모처럼 세계적 과학자로 발돋움하는 황 교수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이 그렇게도 못마땅하단 말인가?” “연구 성과 자체가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면 당연히 규탄돼야 하지만 과정상의 실수나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을 교정하는 선에서 지적하는 애정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인가?” 

    보통 사람들의 의구심은 ‘황 교수 죽이기’와 ‘PD수첩 옹호’론자들의 진짜 의도는 무엇이며 그들끼리의 어떤 의견 통일 같은 것은 없는 것이냐에 쏠려 있다. 세계적 기준에서 볼 때 좌파의 이념 성향은 일반적으로 지구환경, 낙태, 사형제도, 빈부문제, 노조운동, 학생운동, 생명윤리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한국의 좌파도 그런 성향에 치우쳐 있으면서 유독 반(反)서울대, 반강남, 반기득권, 반재벌, 반미에 강한 면을 보여 왔다. 한국의 좌파 운동에는 ‘민족끼리’가 강하며 친북(親北)도 그 줄기를 타고 있다. 

    이런 것들이 ‘황우석 사태’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일반의 상식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오마이뉴스에서 ‘국익론에 대한 맹신’ ‘과정의 정당성에 대한 포기’를 거론하며 이것을 개발독재 논리에 갖다붙인 것을 보면 황우석 옹호론을 기득권의 산물이거나 개발독재의 잔재쯤으로 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어느 논자는 오마이뉴스에 ‘과학기술과 독점자본과 국가의 유착이라는 고전적 진보이론의 틀로 황우석 현상을 보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의 한 기자는 PD수첩에 대한 비난을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제국주의에 빗대어 ‘과거 독재에 의해 강요된 전체주의’로 풀고 있다. 이런 말들은 그 자체로 이견에 대한 관용을 허용치 않고 극단적으로 매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체면이 크게 손상된 쪽은 대통령이다. PD수첩에 응원을 보내다 ‘수첩’이 사과하는 바람에 공중에 떠버린 대통령의 모습에서 우리는 ‘보통사람’ ‘보통마음’을 읽는 데 실패한 좌파(혹자는 진보라고 부르지만)의 당혹감을 읽을 수 있다. 

    황 교수에 대해 작은 애정을 지닌 대다수 보통사람(네티즌)들은 어쩌면 지난번 선거에서 개발독재와 전체주의를 거부하고 이 정권을 탄생시킨 주역들인지도 모른다. PD수첩이 협박 수단을 동원해 가면서까지 황 교수 연구 업적을 깎아내리려는 것에 분노하는 ‘보통마음’들은 한국의 축구에서 자존심을 되찾으려 광화문을 물들였던 ‘붉은 악마’들의 바로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 ‘국익’이란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는 의지와 노력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어떤 결과에 대한 배타적 손익계산이 아니지 않겠는가. 이들은 이제 ‘보통사람 깎아내리기’까지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