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이 쓴 '노트북을 열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상극이다. 부시 대통령은 상원의원 할아버지와 대통령 아버지를 둔 미국의 대표적 귀족 가문 출신이다. 집안 덕분에 예일대와 하버드 대학원을 다녔다. 대통령이 된 것도 부시 가문의 막강한 파워가 결정적 배경이 됐다.

    반면 노 대통령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졸업한 뒤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대통령 자리도 거의 혼자 힘으로 올랐다. 부시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보수적인 인물로 평가되지만 노 대통령은 정반대다.

    따라서 두 사람이 비슷하다면 지지자들은 불쾌할 것이다. 한쪽에선 "시어도어 루스벨트(부시가 존경한다는 제26대 미 대통령) 정도라면 몰라도 어디 거기에다…"라는 냉소가, 다른 쪽에선 "진보의 상징인 노 대통령을 어떻게 그런 수구 꼴통과…"하는 코웃음이 터져나올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보자. 

    공교롭게도 두 명 다 1946년생으로 나이가 같다. 부시 대통령(양력 7월 6일)이 노 대통령(음력 8월 6일)보다 약 두 달 먼저 태어났다. 그거야 우연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세상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성격이다.

    두 사람 다 직설적이다. 노 대통령은 말을 잘하고, 부시 대통령은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대놓고 얘기한다는 본질은 똑같다. 이 때문에 "국가원수로서 품위나 절제된 함축미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소리도 듣는다. 직설적인 사람들은 독선적이기 쉽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남의 말도 듣기 싫어한다.

    두 대통령 모두 신문을 안 읽는다. 노 대통령은 "신문은 심심할 때 재미삼아 읽는다"고 빈정거렸고, 부시 대통령은 "참모들이 요약해 갖다주는 걸 읽는다"고 말했다. 백악관과 청와대 홍보 참모들의 태도도 유사점이 많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우린 국정을 다루느라 여론에 신경 쓸 여가가 없다"고 주장한다.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 지지도가 떨어지는 건 국민의 민주주의 훈련이 덜 돼서 그렇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 이뿐 아니라 두 대통령 모두 기대고 의지하는 2인자가 있다. 부시에겐 딕 체니 부통령이고, 노 대통령에겐 이해찬 총리다. 체니와 이 총리 모두 이념적 성향과 자기 색깔이 뚜렷하다.

    부시 대통령은 선거 때 '온정적 보수'를 주창했다. 소수파와 가난한 사람들을 감싸안겠다는 것이었다. 또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이루겠다고 했다. 하지만 부시 집권 이후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선거 때 "호남당에서 영남 후보가 나오면 영호남 화합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 집권 이후 영호남의 상호 거부감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의 스펙트럼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닌 듯싶다. 이념이 달라도 상대방을 인정하는 겸손함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무오류고, 남들은 잘못이라는 독선에 사로잡히면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끼리도 종국에는 싸움질을 하게 마련이다.

    미 프린스턴 대학의 대통령학 전문가인 프레드 버거슈타인 교수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대화와 타협을 정치의 본질이 아니라 야합이나 협잡이라고 봤기 때문에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정치의 본질을 뭐라고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