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란에 이 신문 정진홍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제주도엘 내려갔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날이 몹시 궂었다. 폭설이 내리고 바람이 세차 온종일 비행기마저 결항되고 말았다. 결국 서울로 올라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발이 묶여 버렸다.

    날씨도 알아볼 겸 해서 텔레비전에 눈을 돌리니, 황우석 교수에 대한 MBC PD수첩의 취재접근 과정이 정말이지 상식을 벗어난 파렴치한 것이었음을 알리는 또 다른 뉴스채널의 보도가 쉼 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MBC PD수첩은 미국 피츠버그대학의 섀튼 교수팀에 파견됐던 3명의 연구원들에게 "생명공학에 대한 다큐멘터리 3부작을 취재하겠다"고 접근해 "황 교수의 줄기세포가 가짜로 판명났고 사이언스 게재 논문이 취소될 것이며 황 교수도 구속될 것이고 미국에서도 수사가 진행될 수 있으며 같이 연구한 사람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황 교수와 강모 교수만 끌어앉히면 된다. 다른 사람은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당신은 젊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미국에 남는 진로에 대해서도 솔루션을 내놓겠다"며 신분보장까지 거론하면서 연구원들에 대한 협박과 회유를 거듭했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연구원들의 요구조차 무시하고 몰래카메라를 쓰거나 은밀하게 녹음까지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갈 데까지 간 것이다. 설사 이렇게 해서 확보한 진술들이 사실이라 해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다. 은밀히 이뤄진 도청보다 더한 것이다. 솔직히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MBC PD수첩의 한판 난장(亂場)을 보노라면 정말이지 이 말밖엔 안 나온다. "젠장, 이 망할 놈의 나라!"

    MBC PD수첩의 황우석 교수 관련 방송은 애초에 글로벌 수준에 부합하는 윤리기준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하지만 방송 직후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MBC PD수첩은 마치 비장의 반격무기라도 되는 양 마침내 줄기세포 진위 논란을 촉발시켰다. 그리고 MBC PD수첩은 그 스스로가 최고 권위의 과학적 판단자라도 되는 것처럼 '오버'해서 나섰다. 그때 이미 망조(亡兆)가 들었다.

    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방송국 PD가 과학자들의 실험결과마저 판단하는 위치에 서게 됐단 말인가. 더구나 방송국 PD가 뭐기에 확인되지도 않은 황우석 교수의 실험조작 의혹을 전제로 검찰수사와 구속을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젠 방송국 PD가 스스로 기소권을 행사하는 검찰 행세까지 한다는 것인가.

    게다가 방송국 PD가 자신들에게 협조해 순순히 털어놓으면 계속해서 미국에 남아 연구할 수 있도록 주선하겠다는 식으로 순진한 연구원들을 회유하고 사실상 협박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과거 어두웠던 시절의 정보부에서나 했을 법한 수법을 써가며 그렇게 거짓 행세해도 되는 것이란 말인가.

    물론 황우석 교수도 지적받을 수 있고 비판받을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MBC PD수첩이 한 일은 단순히 지적이나 비판이 아니다. 다분히 감정이 섞인 것들이다. 아니 감정이 섞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타깃을 정해 놓고 죽이려고 작심하고 시작한 일이다. 저승사자라도 되는 듯 목줄을 쥐고 흔든 것이다. 그것은 이미 군림하는 방송의 횡포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가 공갈협박으로 사법처리감이다. 정작 고발프로그램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MBC PD수첩이 이제는 고발당해야 마땅한 상황이다.

    게다가 과연 MBC PD수첩이 그렇게까지 문제를 확대하고 비틀어서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이익이 뭐란 말인가. 알 권리의 충족? 진실의 추적? 비판적 탐사보도? 말이 좋아 알 권리고 진실추적이며 비판적 탐사보도지, 그것을 행하는 주체가 모든 것 위에 선 전지전능한 판단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순간 스스로 망가질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공든 탑마저 무너져 버린다는 것을 왜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