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들이 이어준 ‘자전거 바퀴 바람으로 맺은 인연’800여일 만에 결혼 골인...허니문은 자전거 일본여행
  • 남자는 안양천을 자전거로 달리고 있었다. 자그마치 시속 30㎞!
    신나게 질주를 하는데 갑자기 앞쪽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
    한 여자가 탄 주황색 티티카카(자전거의 한 종류)가 앞서 달리고 있었다.
    달리던 속도가 있어서 지나쳤지만 힘든 척 하고 이내 속도를 줄였다.
    티티카카를 다시 앞세우고 뒤를 따라갔다.
    말을 걸어보고는 싶은데 마땅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망설이던 남자의 눈에 여자가 탄 티티카카의 타이어에 공기가 많이 빠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바퀴가 많이 출렁거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쭈뼛쭈뼛 말을 걸었는데 다행히 티티카카의 여자가 응대를 해왔다.
    갖고 다니던 휴대형 펌프로 바람을 넣어준 남자는 “바람을 넣었지만 자전거점에 가서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누구인지 묻지도 못하고 돌아온 남자는 그날 밤 자신이 활동하던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한 카페에 아쉬움을 남겼다.
    “그게 다였습니다. 못내 아쉬웠다는...
    기름때 묻은 손을 뒤로 하고 뭐라 특별히 말은 못했습니다.
    뭐. 솔직히 좀 오버해서 말한 것도 있지만 타이어에 바람이 많이 빠져 있었던 거였어요.
    그걸 도와주려고 했던 겁니다. 네...
    그런데 왜 이렇게 슬프죠. ㅠㅠ.“
    스치듯 만난 여자는 그렇게 남자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며칠 뒤 디시인사이드의 한 카페에 야릇한 글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은 ‘내 타이어에 바람 넣어준 남자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였다.
    여자는 “다혼미벨블랙(자전거의 한 종류) 타신 남자사람님, 리플 안 달아주면 꾸준히 글 올립니다. 기억나면 리플 남겨주시죠”라고 짧지만 강한 바람의 글을 올렸다.
    티티카카를 탄 여자였다. 그녀 역시 ‘타이어에 바람 넣어준 이름도 성도 모으는 남자’에 애틋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카페에서 활동해 자칫 만나지 못할 수 있었던 이들은 두 인터넷 카페를 같이 본 네티즌들에 의해 연결됐다. 네티즌들은 이들의 사연에 상대의 글들을 댓글로 담아 서로의 마음을 전해줬다.
    네티즌들의 중매로 이들은 지난 2008년 만났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25일 티티카카를 탄 여자는 자신이 활동하던 카페에 이렇게 근황을 전했다.

    “자전거 타다가 우연히 마주치고 인터넷의 도움으로 다시 만나게 된 남자친구랑 700일이 다 되어 가는 게 자랑.
    우리의 사연을 남자친구가 이벤트 응모하는 곳에 올렸는데 역시나 당첨되어서 다이아반지 받은 게 자랑.
    그리고 어제 청혼이란 걸 받은 게 자랑.
    난 복 많이 받은 여자 같다는 게 자랑.“

    그리고 지난 5일 인터넷 한 카페에 어느 네티즌이 한동안 잠잠하던 이들의 근황을 전했다.
    “몇 년 전 인터넷을 달궜던 디시(디시인사이드)에서 온 여자, 네이버에서 온 남자, <자전거 바람 넣은 커플>. 그 커플이 700일도 넘기고, 결혼하기로 했다는군요. 신혼여행지는 자전거로 일본 질주! 정말 이런 인연이 닿아 골인하기도 하는군요. 저는 언제쯤...”

    그리고 '타이어에 바람 넣어준 남자'의 블로그는 성급한 한마디도 올라와 있었다.

    "엄마 아빠 어디서 만났어?" "안양천!"   

  • ‘자전거 바람 넣어준 남자’가 이벤트에 응모해 받은 다이아반지.ⓒ디시인사이드 갤러리 캡처
    ▲ ‘자전거 바람 넣어준 남자’가 이벤트에 응모해 받은 다이아반지.ⓒ디시인사이드 갤러리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