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은 북침인가 남침인가’라는 질문에는 ‘남침’이 정답이다.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는가’라고 반문한다면 금상첨화겠고, 질문자도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이 정답은 한국인이면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상식이고, 왜 그런 상식을 묻느냐고 짜증을 내는 것은 중학생들도 할 일이다. 아울러 이 정답을 말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즉각’이지 결코 머뭇거릴 게 못된다.

    그러나 이 나라의 통일부장관이 된다는 이재정씨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마디로 규정해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변한 것이다. 질문자인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역사적 사실에는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추궁했을 때야 비로소 ‘남침이라는 사실은 이미 규정돼 있다’고 겨우 대답했을 뿐이다.

    TV를 통해 이 뉴스를 보고 속이 뒤집어진 국민들은 어지러운 머리를 이렇게 정리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이재정씨의 답변은 세가지 점에서 너무 입빠른 소리였다. 첫째 1950년 6월25일 아침 북한 인민군 탱크가 물밀듯이 쳐내려오는 광경을 본 사람이 다 죽어 없어지기 전에 말했으니 입빠르다. 둘째 6·25남침을 보진 못했어도 그렇게 듣고 배워서 아는 사람들이 다 죽어 없어지기 전에 말했으니 입빠르다. 셋째 남침을 증언하는 책과 문서와 사진과 기록들이 다 불태워 없어지기 전에 그런 말을 했으니 입빠르지 않을 수 없다.”

    이씨는 남침을 보지 못했을까. 그는 1944년생으로 6·25가 나던 1950년에 여섯 살이었다. 전쟁의 참모습을 충분히 보고 기억했을 나이다. 혹시 배우지 못해서 그럴까. 그는 명문고(경기고), 명문대(고려대) 출신의 지식인이다. 거기다 거짓말을 삼가야 하는 종교인(성공회 신부) 출신이다. 보지 못했을 리 없고, 배우지 못했을 리 없고,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닌데도 그런 대답을 하니 정말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이재정씨처럼 생각하고 그와 비슷하게 말하는 이상한 지식인은 많다. 지난달 10월30일 민주노동당 간부들이 방북을 ‘감행’했다. 감행이라고 한 것은 북의 10·9 핵실험으로 나라 전체가 불안하고, 막 민노당 당원의 간첩혐의 사건도 터진 터라 방북을 보류하라는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이 여론을 무시하고 방북한 그들은 평양에서 김일성 생가도 방문하고, 또 북한 핵실험에 유감을 표명하기도 한 모양이다. 그러나 북측 상대로부터 들은 대답은 ‘그 유감표명에 유감을 표명한다’는 희롱조 대꾸였을 뿐이다.

    같은 시기에 남북을 대표(?)한다는 문인들 100여명이 금강산에서 모여 ‘6·15 민족문학인협회’라는 걸 만들었다. 이들은 앞으로 남북 문인들에게 ‘6·15 통일 문학상’을 공동수여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듣고 소설가 고정욱씨는 이렇게 질타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우상화 정책의 선봉에 선 앵무새의 지저귐만이 저들의 문학적 관심사이니 남북한을 넘나들며 더불어 민족 문학의 발전을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런데도 오는 28일 금강산에서는 ‘남북언론인 통일토론회’라는 것이 열릴 예정이란다. 이것 역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북한 핵실험 소식에 접한 정현종 시인은 열흘 뒤인 지난 10월19일에 지은 시에서 이렇게 울분을 토했다. “그 어떤 이유도/‘핵실험’을 정당화하지 못한다/우리/그 참담함을 이미/알기 때문에/…/단언컨대/그대들의 목적이 무엇이건/그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그대들이 성취하는 건/나라의 파멸….” 정 시인은 “글쟁이는 나라에 위기가 오면 말할 책임이 있다”고 울분의 후일담을 털어놓는다.

    지식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에 의하면 ‘획일주의에서 벗어나 밤을 새우는 사람’이다. 북한은 지구 최후의, 전대미문의 획일주의로 2300만 동족이 고통받는 곳이다. 왜 그런 곳의 권력자에게 항의는 못할망정 아첨하기에 바쁜 이상한 지식인들이 남쪽에서 족출(簇出)하고 있을까. 그저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지적대로 ‘남북한 집권층이 사상적 혈연관계’에 있어 그 영향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