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러운 민노총 농성…전문가들 "정부에 책임 돌리려는 전략"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농성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농성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특수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하자. (문재인 정부는)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

    민노총이 특수고용노동자(이하 특수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반(反)정부 시위를 벌였다. 전문가들은 민노총의 특수노동자 노동권 보장 요구에 대해 "다른 복잡한 의도가 내포돼 있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민노총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노조설립·단체교섭·단체행동) 쟁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가로막는다면, “문재인 정부도 적폐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文 대통령 의지만 있어도... 공약 지켜라"

    김종인 민노총 부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20년 동안 (특수노동자) 노조를 만들기 위해 싸워왔다. 그동안 국회에서 한 발짝도 진전이 없었다. 그나마 19대 국회에서 문턱까지 갔지만 좌절됐다. 정부는 여소야대라고 핑계만 댄다. 지지율 70%대에서도 못하는데 나중에는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핑계를 댈 것이 아니냐. 당장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자 기본권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지키길 바란다."

    민노총은 "노동법도 개정돼야 하지만 법(法)을 떠나 대통령, 여당,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행정 조치로 얼마든 노조신고증 발부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수노동자인 대리운전기사, 보험설계사, 화물트럭기사 등은 현행법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조를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민노총 측은 특수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의 개정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여의도 광고탑에 오른 이영철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전화연결을 통해 "노동자로 인정받고 노조할 권리를 얻는 게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250만 특수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 11일부터 여의도 국회 인근 여의2교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이영철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이 9일째 고공농성 중인 여의2교 광고탑.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 이영철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이 9일째 고공농성 중인 여의2교 광고탑.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 "돈다발 노예, 노동기본권 말살 음모...적폐! 적폐!"

    민노총이 주도한 농성에서는 강도 높은 발언도 쏟아져나왔다.

    박구용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부위원장은 "대리운전기사가 노동자라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도, 노동부 직원들도, 국민들 심지어 유치원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라고 입을 열었다. 

    "나쁜 사장X들의 돈다발 노예가 된 (문재인)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이 이걸 미루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우리 앞길을 막는 자들은 모두 적폐세력이니 격퇴하겠다."

    이어 오세중 보험설계사노조 위원장은 "우리는 항상 피해만 보고 어떤 기관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인데, 정부가 못하는 일을 우리 스스로가 회사와 협상하겠다는데 왜 노조할 권리를 안 주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김태연 노조하기좋은세상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IMF 이후 이 땅의 자본과 결탁하고 있는 권력은 노동자 기본권을 말살하기 위한 거대한 음모를 자행했다. 바로 너희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이상 이런 적폐 용납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이든 문재인 정부든 강력히 경고할 것이다."


    ○ 전문가들 "특수노동자 업종 특성 고려해야"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모든 특수노동자의 근로자 인정은 업종 특성상 여러 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연대 경제실장의 설명이다. 

    "특수고용직 규모가 가장 큰 종사자는 보험업인데, 당사자들이 4대 보험을 참여하길 원치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보험설계사는 업종 특수성으로 근무장소와 시간이 유연한데, 4대 보험 형태로 가입하게 되면 회사에서 타이트한 관리를 하게 돼 탄력적인 근무가 어려워진다."

    실제 보험연구원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설문조사 자료에서 보험설계사 78.4%는 개인사업자 고용형태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정급이 아니라 실적에 따른 소득을 얻는 보험설계사는 개인사업자로서 현재 사업소득세 3.3%를 내고 있지만, 근로소득세를 내게 되면 세율은 최고 40%까지 올라간다.

    김영훈 실장은 "임시직이나 파트타임직이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정규노동자와 특수노동자 모두를 근로자로 보는 것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실익이 크지 않은 부분이 있어 특수직 종사자가 모두 4대 보험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나아가 김영훈 실장은 파업 인력이 필요한데 노조 가입률은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을 지적하며 "(이번 농성은) 몸집을 불리는 것이 중요한 민노총 자체의 목적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농성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농성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호영 기자

     

    ○ 결국 노조 천국 만들자는 얘기 "나라의 큰 부담 될 것"

    남정욱 숭실대학교 겸임교수는 "특수노동자들이 노동 문제를 조금만 파고 들면 민노총 노조원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노총은 (거대세력인) 특수노동자와 갈등을 빚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우군이 될 수 있는 세력을 확보하면서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전략을 펼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정욱 교수는 "모두 근로자가 되면 결국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는 논의로 이어갈 것이고, 이는 노조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얘기로 확대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공무원의 나라로 가는 상황에 더해 노조의 나라로, 친노동 정책을 펼치는 것이 당장 현 정부의 입장에선 이미지가 좋겠지만 언젠가는 큰 부담으로 다가와 나라의 성장동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결국 한국이 그리스와 중남미의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계하기도 했다.

    한편, 민노총이 주장하는 특수노동자 노동 3권 보장은 이미 그린라이트가 켜진 상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특수고용자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지난 5월 정부에 권고했고, 지난 10월 고용노동부가 수용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올 하반기 특수노동자 실태조사와 전문가들의 논의를 통해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보호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인권위에 전달했다. 민노총이 이러한 농성을 벌이는 것은 자신들의 의사가 관철될 때까지 더욱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반면, 재계의 입장은 상반된다. 재계는 특수노동자 노동3권 보장이 결국 업종 특수성을 약화시키고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상태라 향후 논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