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화제의 신간]

자유시장경제의 위기와 한국경제의 미래 [오래된 새로운 비전]- 기파랑 출간

기파랑 칼럼 | 최종편집 2017.11.13 10: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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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자유주의가 대세다

한 때 전 세계적으로 좌파의 이념과 진보의 논리가 지성계(知性界)와 서점가(書店街)를 지배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좌파 진보의 논리가 인간 본성에 반한다는 것이 입증되고, 현실 사회주의 실험도 파탄으로 끝남에 따라, 서구 선진국의 경우 좌파 진보주의는 학계 일부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우파 자유주의가 대세(大勢)다.

우리는 세계적 조류를 거스르고 있다

그런 세계적 조류와는 반대로 우리나라의 경우 민족주의와 민주화의 탈을 쓴 좌파 진보주의가 대한민국을 통째로 접수하였다. 대한민국 우파는 보수주의란 이름으로 현실 정치와 학계에서 허울만 있을 뿐 뿌리내린 적이 없으며 그 씨가 뿌려지지도 않았고, 제대로 인식된 적도 없다.

80년대 이후 좌파 진보를 주창하는 책들이 홍수를 이뤄 서점가를 지배하고 젊은이들을 세뇌시키더니, 그 결과 지금 나라 전체가 길을 잃고 해매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위기의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우파의 가치와 비전을 다룬 『오래된 새로운 비전』과 우파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개별정책을 구체화한 전략지침서인 『오래된 새로운 전략』 등 두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30명의 우리나라 최고 자유지성인들이 오늘날 지리멸렬한 우파의 회생을 위해 우파의 비전과 전략을 정리, 집대성한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반자유주의 물결이 대세를 이루는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항하는 대안의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왜 오래된 새로운 것인가

책 제목에서 ‘오래된’과 ‘새로운’은 설명을 요한다. 절대왕조의 붕괴 이후 등장한 근대 시민사회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이미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하이예크나 미제스 등의 현대 자유주의 경제학만 해도 이미 1920~30년대의 것이어서 그것은 ‘오래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이념이 제대로 인식된 적도 없고 씨가 뿌려진 적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새로이 조망하려니 그것은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다. 물론 서구 선진국이라면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아주 오래된 이념일 터이다. 그러나 좌파 진보이념이 팽배한 한국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이념이다.

왜 자유주의인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적 논란은 1902년에 출간된 좀발트(Werner Sombart)의 󰡔근대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의 반대체제로 부각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를 자본 소유자의 이익에 특별히 봉사하는 체제로 묘사함으로써 그 이익의 반대편에 있는 프롤레타리아를 자극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선 우파와 좌파 혹은 보수와 진보 사이에는 자유에 대한 개념 차이가 있다. 자유에는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 두 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서 우파 자유주의자들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이다. 우파 보수주의자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이다. 소극적 자유는 홉스에서 시작하여 로크, 흄, 에드먼드 버크를 거쳐 20세기의 미제스, 하이에크 등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들과 미국의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 그리고 현대의 자유주의자들(libertarian)들이 계승하고 있는 개념이다.

하이에크는 소극적 자유 가운데서도 더 소극적인 자유, 어찌 보면 가장 미니멀한 자유를 주장한다. 그는 자유란 ‘--로부터의 자유’ 조차 아니라고 주장한다. 제약으로부터 놓여난다는 뜻에서의 자유가 아니고, 하다못해 ‘자유를 위한 노력’에서부터 생겨나는 자유도 아니다. 정치적 제도로서의 자유는 이미 확보되어 있고 익숙해 있는 개인 영역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개인의 경제적 활동 영역인 재산, 직업, 나아가 가족의 생명과 안녕, 그리고 일상적 생활을 영위하는 자유, 이런 것들이 모두 한 개인이 보호하고자 하는 자기의 영역일 것이다. 이 처럼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자기 영역을 보호하는 데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여러 가지 행동규칙이 있을 것이다. 이 규칙들의 준수가 사회에 ‘자생적 질서’를 만들어 낸다고 하이에크는 주장한다.

왜 보수인가?

그런데 개인이 자기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규칙들과 생활 방식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론적으로 변화해 온 것이다. 물론 기술의 발달과 변화는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다. 예컨대 가축의 사육 기술이 발달하면서 수렵시대는 유목 시대로 넘어 가는 등 인간의 생활 방식이 대규모로 변했을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다. 자기의 생명, 재산, 생활 방식, 그리고 이와 관련된 규칙이나 법률을 보수(保守, conserve)하는 것이 곧 자유이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그런 자유만이 참답고 유용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자유라고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로크가 보수의 세 요소로 뽑은 생명과 재산과 자유를 한 데 섞어 생각할 수 있다. 즉 생명과 재산을 자유에 포함시켜도 좋고, 생명과 자유를 사유재산에 포함시켜도 좋으며, 마찬가지로 재산과 자유를 생명에 포함시켜도 좋을 것이다.

사회주의적 자유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적 자유인 적극적 자유를 특히 장-자크 루소에서 발견한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서문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나 질곡(桎梏)에 매어 있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인간을 모든 인위적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이제까지 인류에게 종족의 번영과 생산성 향상을 가져다 준 모든 규칙들을 털어내라고 촉구하였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이 새로운 개념의 자유는, 지금에 와서 보면, 자유를 획득하는 데 가장 큰 방해물로 작용하였다. 루소는 인민의 의지 또는 ‘일반 의지’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이 일반의지를 통하여 전체 인민은 ‘단일한 존재, 즉 한 사람’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은 그대로 민중적 팟시즘이 아닌가.

사회주의는 적극적 자유를 얻어 내려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의 한계가 있다. 우선 자원이 유한하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자원은 유한하므로 적극적 자유의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평등의 문제이다. 사회주의는 그 사회가 생산한 가치를 평등하게 분배 받는 선까지의 자유를 요구한다. 무한한 적극적 자유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물질적 평등까지는 이루겠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대로 가져가는’ 유토피아 사회가 그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역사적 진실은 이것이 모두 거짓임을 보여 주었다. 하이에크는 설계주의(constructivism)라는 말로 사회주의 소련을 진단하고 그 체제의 실패를 예견했다.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불가불 생산 수단의 국유화와 중앙 계획경제를 실시하지 않을 수 없고, 생산은 수량, 품질, 종류가 모두 중앙 계획에 의하여 집행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자원은 낭비되고, 생산은 수량도 품질도 종류도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능력껏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노동하게 되고, 필요한 대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요도 가져가기가 어렵게 된다. 북한의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왜 자유시장 경제인가

자유주의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전제로 한다.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국가 번영의 유일한 대안임을 인류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역사가 분명히 보여줌에도 그 동안 대한민국 지성의 무지와 무책임 때문에 보수가 밀려나는 현상을 자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에선 자유시장경제체제가 문제가 많은 체제, 또는 만악(萬惡)의 근원인 체제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는 참으로 문제가 많은 정치체제임에도 우리는 이를 절대시 신성시 하여 민주주의 근간인 절차적 정당성은 깡그리 무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책은 광장의 촛불과 함성이 절차와 제도를 짓밟아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함에도 촛불과 함성이 곧 민주주의라고 믿는 무지함이 지배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경제와 정치 뿐 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좌파 진보의 논리가 팽배하여 나라가 질곡(桎梏)의 나락(奈落)으로 빠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작은 정부가 답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위기의 본질이 오래된 비전인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자유민주 정치체제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대한민국 지성의 위기에 있다고 진단한다. 대한민국의 오늘의 위기는 대한민국 지성의 위기이고 전적으로 지성인의 책임이다. 반듯하고 번창하는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기라는 과제를 두고 제대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적이 전혀 없다. 아니 제대로 논의한 적도 많지 않다. 지성의 직무유기다.

정책담당자들에게는 물론 반자유주의 정서에 물들어 있는 모든 정치인들에게 작금의 정부정책들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명쾌히 적시해 준다. 나라의 번영은 무소불위의 정부와 정치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시장경제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 정부는 문제의 해결사가 아니라 항상 문제의 원인 제공자였다는 것, 따라서 큰 정부가 아니라 작은 정부가 답이라는 것이 이 책이 제시하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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