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따라 오락가락 '통상임금' 폭탄... 누가 책임지나

통상임금 확대 → 실업 발생 '역효과'… "사법적 규제가 경제성장률 둔화시켜"

박진형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09.01 15:5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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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여금과 점심식사비를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소급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고무줄 같은 법원의 잣대에 고개를 갸우뚱 하는 모습이다. 소급 적용에 대한 기준인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조건도 모호한 탓에 학계 내부에서는 법적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쇄도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41부(재판장 권혁중)는 기아차의 정기상여금과 중식대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날 기아차 노조원(2만7,000여명)이 사측에 요구한 1조926억원(2008~2011년) 중 일비가 고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4,22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앞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것은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2010다91046)에서 인정됐다. 다만 정기상여금에 대한 소급청구는 '신의칙'이라는 대원칙을 적용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즉 통상임금은 1개월을 초과하는 정기상여금을 포함해 소정근로의 대가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는 것이다. 다만 정기상여금에 대한 소급 청구는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 신의칙 법리 적용을 통해 제한한다고 했다. 하지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 "법원이 오히려 노사 자율협약 신뢰성 깨뜨려"

강원대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이런 사회적 갈등과 법적 안정성 회복을 위해서는 대법원이 신의칙 적용에 대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하급심 판사들이 헛갈리지 않고 일관된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적 다툼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기존의 노동관행을 존중해야 한다"며 "이런 내용을 포함하는 근로기준법 마련과 근로기준법 시행령 및 통상임금산정지침을 고쳐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항목들의 기준과 성격을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인 사건 가운데 △시영운수(15.5.28) △한진중공업(16.8.25)은 1심과 2심에 모두에서 신의칙을 인정 받았다. △아시아나항공(15.10.15) △현대중공업(16.2.12) △현대대미포조선(16.2.23)은 1심에서 신의칙 부정, 2심에서는 인정을 받았다. 반면 △남부발전(15.12.15)은 1심과 2심 모두 신의칙을 인정 받지 못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기업들이 30~40년 간 정부 지침에 따라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임금을 산정·지급했는데 법원이 합의 내용과 전혀 다르게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해 추가 임금을 지급하라고 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노사 관련 정부 지침과 노사 자율협약에 대한 신뢰성을 깨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정치권은 통상임금에 대한 정확한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진화에 나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번 판결이 추가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의 지렛대가 되도록 노사정이 노력해야 한다"며 "통상임금 논란이 입법 미비에서 시작된 만큼 근거법에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기획재정위 간사인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통상임금이 법제화되지 않고,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 용어만 나오고 정의가 없는 상태에서 법이 운영됐다"며 "그러다 보니 법원마다 판결을 달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은 "현재 통상임금 관련 소송 115건이 진행 중이지만 국회가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논란을 법원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회가 선제적으로 나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기아차 1심 판결로 산업계는 불안에 떨고 있다. 노조의 손을 들어준 기아차 1심 판결을 기점으로 통상임금 소송이 줄줄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와 하태경 바른정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까지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1만여 개 중 192곳이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했다. 이 중 77곳은 노사합의 등으로 소송이 마무리됐다. 현대차·기아차·두산중공업 등 나머지 115곳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 기아차 패소로 다른 대기업을 비롯해 중견·중소기업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여 '소송 대란'이 발생할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희선 법무법인 아이앤에스 변호사는 "많은 국민들이 기아차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통상임금 관련 문의를 하고 있다"며 "특히 근로자들도 이번 기아차 1심 판결로 추가로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는지 묻고 있어 앞으로 소송이 증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내다봤다.

학계의 한 전문가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약간의 소송비용을 부담하면 몇 배의 소득을 얻을 수 있어 소송을 내도 크게 손해볼 것이 없기 때문에 '이기면 좋고 지면 할 수 없다'는 식의 인식이 퍼질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노사간 갈등이 증폭되고 재판까지 이 문제를 끌고가면 현재보다 소송 건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법원의 시장 개입이 실업 증가 유발시킬 것"

경제학자들은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늘어날수록 법원의 시장 개입이 커져 실업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원의 사후적 개입으로 근로자는 인상된 임금을 요구하고 기업은 노사 갈등을 지속시키기 보다는 차선을 선택할 것"이라며 "차선책 중에는 정규직 고용 축소와 비정규직 확대, 기업 이전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사 자치를 존중하지 않으면 실업 증가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임금 등 비용이 증가하면 공급(사용자)이 줄어드는 반면 수요(노동자)는 증가하게 된다. 이럴 경우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지는 불균형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회사는 이런 불균형 상태를 없애기 위해 고용을 감소시키거나 부품 조달 비용을 조절하게 된다.

1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대표 박주근)에 따르면, 기아자동차의 지난해 개별기준 매출과 총 급여는 각각 31조6,419억원, 4조339억원(복리후생비 및 상여금 포함)으로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은 12.8%에 달한다. 여기에 법원이 지급하라는 4,223억원(원금 3,126억 원, 지연 이자 1,097억 원)을 포함하면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14.08%까지 치솟는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상임금이라는 것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처음부터 통상임금 불개입원칙을 선언했어야 한다"면서 "법원이 통상임금에 관한 문제는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어야 옳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판단하기 위해서 매출과 재무상태 등 적정 기준을 산정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상임금 확대로 노동소득분배율이 높아지면 경제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는 거시적 분석을 내놨다.

박기성 교수는 "통상임금이 소급적용까지 되면 예측하지 못 했던 재정적 부담을 떠안게 돼 기업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겪거나, 중소기업의 경우 존립의 문제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며 "경제를 이끄는 기업이 타격을 받게 되면 전반적인 경제상황은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설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1980~2008년에 대한 분석에서도 입증된다. 이 자료에 따르면 노동소득분배율이 50%를 초과하면 경제성장률은 하락한다. 10% 포인트의 노동소득분배율 상승은 연 경제성장률을 1% 포인트를 떨어뜨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62.4%에 이르렀고 1997년 경제위기 후 하락했다가 2015년에는 62.9%로 다시 증가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통상임금 범위를 법원이 결정하는 것은 사법적 규제로 볼 수 있다"며 "노임은 시장의 논리로 결정하는 건데 법원에서 개입을 하다보니까 실업문제 등 시장 왜곡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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