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보고 누락' 논란은 외교통 안보실장의 군기잡기?
  • 문재인 정부 시작부터 터져나온 사드 보고 누락 사태를 들여다보면 '촌극'이 따로 없다.

    역대 정권마다 겪었던 집권 초 부처와의 힘겨루기, 소위 서열정리 과정의 일면이 아니냐는 시각이 팽배하다. 새로 부임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국방부를 길들이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 ⓒ 뉴시스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 ⓒ 뉴시스
    30일과 31일 청와대가 문제 제기한 '보고 누락'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결론은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에 대한 보고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였다.

    청와대가 밝힌 국방부의 사드 관련 보고를 시간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26일(금요일)
    국방부 정책실장이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하지만 내용이 다소 석연치 않자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이 보고 참석자 중 한명을 따로 불러 세부 내용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배치된 사드 2기 외에 4기가 추가 반입된 사실이 확인됐다.

    ② 27일(토요일)
    이상철 1차장은 추가 확인된 내용을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보고했다. 여기에는 국방부가 당초 작성한 보고서 초안에는 '6기 발사대 보호캠프에 보관'이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몇차례 수정되는 과정에서 이 문구가 삭제됐다는 사실도 포함됐다.

    ③ 28일(일요일)
    누락된 보고를 인지한 정의용 안보실장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오찬을 가지고 사드 추가 반입 내용을 추궁했다. 이 과정에서 한 장관은 '그런 게 있었느냐'는 대답으로 반문했다.

    ④ 29일(월요일)
    정 실장은 '국방부가 의도적으로 사드 추가 반입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문 대통령은 "매우 충격적"이란 반응을 나타냈다.

    ⑤ 30일(화요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


    의도적 누락? 1개 포대가 6기 발사대… 상식?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국방부가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도 "(국방부 보고서) 내용을 봤을 때 보고를 들은 분이 그 내용(사드 관련)을 인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국방부도) 인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도적인 보고 누락'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이미 사드 1개 포대 도입은 공식화됐고, 1개 포대가 6기 발사대로 구성되는 건 상식"이라며 "이미 4월 말 4기 반입 사실은 언론에 다 공개됐고, 국방부도 비공식적으로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백번 양보해서 사드 보고가 누락됐다고 해도 핵심은 보고 누락이 아니라 청와대가 보고 지시를 안한 것"이라며 "국방부가 보고를 빠뜨렸다면 보고하라고 지시하면 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허위 보고냐, 누락이냐는 부분은 의도성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며 "조사 중인 만큼 더이상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 ▲ 지난달 26일 YTN 방송이 나머지 사드 발사대 4기 반입을 보도한 화면. ⓒYTN 캡처
    ▲ 지난달 26일 YTN 방송이 나머지 사드 발사대 4기 반입을 보도한 화면. ⓒYTN 캡처


    '외교통' 안보실장의 국방부 군기잡기?

청와대 표현대로 보고를 뭉뚱그려 했든, 의도적으로 누락했든 국방부의 보고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를 문재인 대통령의 '격노'로 이어지게 하고, 국가적 이슈로 만들었어야 했느냐는 데는 의문점이 찍힌다.

국방부의 '영혼 없는 보고 태도'는 비판받아야 할 문제지만, 역대 정권이 집권 초기 각 부처와 초반 기싸움을 벌여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기싸움 과정을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통'인 정의용 안보실장의 국방부에 대한 '군기 잡기'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정 실장은 외교부 출신으로 임명 당시부터 안보 전문성이 부족한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 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안보와 외교는 동전의 양면"이라며 "우리 안보에서 외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정 실장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더욱이 사드 배치에 관련한 업무 주관 부처는 국가안보실이다. 지난 21일 임명된 정 실장이 사드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 들어야 할 곳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아닌 전임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라는 얘기다.

국방부가 보고 누락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김관진 전 실장이 제대로 업무 인수인계를 하지 않은 것이 본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내외에 안보 불안 공개, 외교 망신 당할라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이번 사드 보고 누락 사태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현안에 관한 대처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청와대의 발표대로라면 지난 17~18일 홍석현 미국 특사와 이해찬 중국 특사는 사드가 몇 기 배치됐는지도 모르고 맨손과 빈 몸으로 시진핑과 트럼프를 만나 외교를 한 셈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사드 배치 문제는 국내를 넘어 미국, 중국과도 밀접한 최대 안보 현안이다. 결과적으로 국내에는 사드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키우고, 해외에는 한국 정부가 사드를 두고 아직도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 ▲ 문재인 대통령이 5월24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미중일 특사단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5월24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미중일 특사단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당장 미국 국방부는 "한국과 사드를 배치하는 과정의 모든 조치가 투명하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미국이 국내 안보 문제에 이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건 이례적이며, 이는 한국 정치상황에서 벌어지는 해프닝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야권 고위 관계자는 "일종의 집안 싸움인데, 청와대의 호들갑으로 안보 현안이 대내외로 다 알려진 것"이라며 "사드 현안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미국이나 중국에 심각한 국제 망신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