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일 사설 '일제하 조선인의 삶을 친일·반일의 잣대로만 잴 순 없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9일 '친일(親日)인명사전'에 실을 477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2005년 8월 1차로 발표했던 3090명에다 이번에 1686명을 추가했다. 최종 명단에는 대한민국 국가(國歌) 애국가의 작곡자, 대한민국 국기(國旗) 태극기를 처음 만든 사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 불러왔던 국민가곡의 작곡자,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자(起草者), 16년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있었던 인물도 들어 있다. 연구소는 앞으로 60일 동안 대상자들의 유족과 관계자, 학계 의견을 들은 뒤 8월 말 책을 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친일파에 대한 민족감정이 가장 높았을 때 활동한 반민특위가 조사한 사람이 688명이었다. 2005년 발족한 정부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이제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301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그런데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민특위 후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7배에 해당하는 사람을 친일파로 규정해 내놓았다.

    이렇게 친일파가 많아진 것은 반민특위가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섰거나 일본의 관작(官爵)을 받은 고관, 친일단체 간부, 독립운동가를 탄압했던 고등경찰·밀정 등 악질적 행위자를 친일파로 규정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제시대에 일정한 직위에 있었던 인물,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 선전한 문화예술인들을 모두 친일파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을 강점(强占)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 세월을 이 땅에서 살아온 조선인(朝鮮人) 대부분의 삶은 친일(親日)과 반일(反日)의 이분법(二分法)으로 나누기에는 너무나 복잡다단하다. 일제시대에 청장년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홍난파가 작곡한 수백 편의 한국가곡(歌曲) '성불사' '봉선화' 등등을 통해 나라 잃은 백성의 슬픔과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며 나라를 되찾아야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했던 세대다. 물론 그는 일본의 강압 통치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 일제의 강요에 의해 몇 편의 군가(軍歌)를 작곡했다. 독립된 나라 대한민국에서 마음 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우리가 잘난 듯이 뽐내며 홍난파에게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여도 되는 것일까.

    민족학교 중앙고보 교장 현상윤도 교정과 교실에서 식민지 청년들에게 실력을 길러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면서 민족혼과 독립정신을 심어주던 교육자다. 그 역시 일제 말 학교 문을 닫을 것이냐 말 것이냐는 강요에 밀려 학병(學兵) 지원 격려 연설을 몇 번 하고 그런 내용의 글 몇 편을 집필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6·25전쟁 때 북한에 납치돼 비명(非命)에 간 현상윤이 모진 일제 치하에서 자기가 민족혼과 자주 정신을 불어넣었던 학생들의 아들딸들이 지금 자신의 목에 친일파라는 목걸이를 채우는 걸 지하(地下)에서 어떤 심정으로 바라볼 것인가.

    이번 친일명단을 발표한 사람들이 그 엄혹했던 식민지 시대를 살아보고 자신을 대할 때는 서릿발 같이,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대하라는 '지기추상, 대인춘풍(持己秋霜, 待人春風)'의 마음자리를 지닌 사람들이었다면 차마 이러지는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