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연루 의혹과 관련, 5일 김경준씨가 주가조작 및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되면서 막을 내린 검찰의 BBK 수사는 '검찰의 형량거래설' '영화 모방 범죄' 등의 많은 뒷얘기를 낳고 있다.

    김경준 범행, 영화에서 힌트

    이날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수사결과 발표 이후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에서 김씨의 범죄행위는 영화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씨의 범죄 수법을 설명하면서 2000년 미국에서 개봉한 '보일러 룸'이란 영화를 소개했다. '보일러 룸'은 주식시장의 사기 브로커 조직을 뜻하는데, 김씨는 2001년 8월 이 영화의 주연배우 '지오바니 리비시'라는 이름으로 여권을 위조한 적도 있다. 김 차장검사는 "김씨가 사용하던 옵셔널벤처스 사무실 책상에서 이 영화 DVD를 압수했다"면서 "김씨는 영화 속 유령회사 이름과 주연 배우의 실제 이름을 이용해 유령회사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 영화에는 유령회사의 주식 매매 알선을 업으로 하는 JP말린 증권사에 취직한 주인공 세스(지오바니 리비시)가 회사에 의심을 품고 주식 발행회사인 '메드 패턴트 테크놀러지(Mes Patent Technologies)'를 찾아가 유령회사임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씨는 주가를 조작하려고 유령회사를 설립하면서 이 회사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김 차장검사는 이 영화에서는 사장이 주가 조작 사실이 들통날 것을 대비, 이사할 준비를 하기도 하는데 김씨 역시 도피를 시도하던 중에 수사기관에 1차 적발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BBK' 회사명과 이명박은 관계없어
    밥(Bob)오, 이보라(B), 김경준(K)에서 따온 것
     

    'BBK'라는 회사 명칭도 구설수에 올랐다. 김씨는 한국에 송환돼 처음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BBK는 "'뱅크 오브 바레인(Bahrain) 앤드 쿠웨이트(Kuwait)'의 약자를 따 BBK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이 후보가 중동에 관심이 많아 이 후보가 직접 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진술은 이 후보를 끌어들이려고 꾸민 것이고 BBK 설립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한 밥(Bob) 오와 김씨의 아내 이보라(B), 그리고 김경준(K)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온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가 이 후보와 함께 만든 LKe뱅크는 이명박의 'L'과 김경준의 'K'를 따와서 이름을 지었다.

    김경준 메모내용? "웃긴 얘기" 

    지난 4일 시사주간지 '시사인'을 통해 김씨의 메모 내용이 보도된 것과 관련, 검찰 측은 "검찰이 김씨 사건의 실체를 97% 정도 복원한 상태였는데, 터무니없는 협상을 제안했다는 것은 웃긴 얘기"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BBK 사건을 일선 지휘했던 최재경 부장검사는 "수사 기간 100% 내내 '너 이렇게 불어라'고 수사하지는 않는다"면서 "중간 중간 지내오면서 인생에 관한 얘기, 꿈, 희망, 좌절, 절망, 그런 얘기를 다 하는 사이가 되는데 느닷없이 메모가 툭 튀어나오니까 황당하다"고 말해 김씨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최 부장검사는 "검찰이 수사를 잘하려면 피의자와 형제나 친구처럼 돼야 한다고 배웠다"고 밝힌 뒤 "미국에 부인과 누나에게 통화하도록 해주고 굉장히 폭넓게 해줬다"고 말해 김씨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의아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언론이 이런 보도를 한다면 반대 당사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이런 부분들을 분명히 짚겠다"고 강조해 '메모'사건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경준은 '장사꾼', 형량도 흥정

    최 부장검사는 김씨가 수사 과정에서 형량 흥정을 해왔다며 "김경준은 예측불가능한 사람이며 상당히 치밀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최 부장검사는 "김씨가 송환 직후부터 자기 형량 문제에 굉장히 관심을 갖고, 뭘 좀 해보려 하는 게 있었다"면서 "김씨가 스스로를 '장사꾼'이라고 부르며 수시로 형량 협상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씨가 진술에서 여러 모순점이 드러나니까 느닷없이 '나는 장사꾼이다. 장사꾼은 계산을 따진다. 내가 사문서 위조한 것은 인정할테니까 불구속으로 해 달라'고 제의해 왔다"면서 "처음에 자신의 형량을 스스로 판단하기로 12년형이라고 했으나 그 후 변호인과 7년, 10년, 3년 등의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고 밝혔다.

    최 부장검사는 "김씨가 미국과 한국의 제도적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한국엔 없는 미국의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거나 형량을 낮춰 주는 제도)을 이 사건에 적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씨가 호송차 안에서 수시로 형량협상을 요청했고, 변호사나 검사가 '우리나라는 플리바게닝제도가 없다'고 하면 '왜 없느냐, 우리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