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2012년 500억→2021년 1조원 확대… “이익관계 시민 참여 막을 장치 있나” 우려
  • ▲ 서울특별시 시청 청사. ⓒ뉴데일리 DB
    ▲ 서울특별시 시청 청사. ⓒ뉴데일리 DB
    서울시가 시민들이 직접 예산을 편성하고 평가하는 ‘시민숙의예산’을 내년부터 1조원까지 확대하기로 해 논란이다. 시민들이 예산 편성 협의 과정에 참여해 재정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는 취지지만, 전문성 등이 부족한 시민들이 1조원 규모의 예산 편성은 물론 정책사업까지 결정하는 게 '보여주기식 행정 아니냐'는 지적이다. 더구나 참여율도 저조해 일부 소수가 예산 편성 등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재정민주주의 구현'이라는 서울시의 취지는커녕 대표성조차 없는 제도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13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생활밀착형 사업 위주로 진행했던 '시민숙의예산제' 대상을 2021년까지 시정 모든 분야로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에는 안전·문화예술 등 7개 분야가 추가된다. 예산도 △2019년 2000억원 △2020년 6000억원 △2021년 1조원으로 늘어난다.

    시민숙의예산제는 약 1년간 대상사업을 선정하고 공론·투표 단계를 거쳐 다음해에 사용할 예산을 결정한다. 2012년 5월 예산 500억원으로 시작한 ‘시민참여예산’에서 규모와 범위를 확대한 제도다. 예를 들면 2020년 6000억원의 예산을 가지고 사업 선정부터 결정까지 논의해 다음해인 2021년 이를 편성하는 것이다.

    서울 인구 2%, 1조원 예산 '쥐락펴락'… 대표성 논란 불가피

    올해 시민숙의예산은 2월10일 ‘2020 숙의예산시민회 출범식’을 시작으로 2~3월 예산 기본 이해, 분야별 사전학습을 실시한다. 3~7월에는 숙의대상사업 선정부터 본격적인 숙의·공론화 및 시민투표를 통한 우선정책사업 결정까지 진행해 2021년 예산을 편성할 계획이다.

    시민숙의예산은 ‘숙의형’과 ‘제안형’ 두 가지로 나뉜다. ‘숙의형’은 공무원이 짠 예산을 시민들이 타당성 검토 등을 논의하는 방식이다. ‘제안형’은 예산과 공모전 등을 통해 예산 편성을 건의하는 방식이다. 올해 배정된 6000억원의 예산 중 5300억원이 숙의형에 배정됐고, 나머지 700억원은 제안형에 배정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시민숙의예산제는 지난해 숙의한 △여성 △복지 △환경 △시민건강 △민생경제 △사회혁신 6개 분야에 더해 △안전 △교통 △문화 △관광체육 △주택 △도시재생 △공원 등 총 13개 분야로 확대됐다”며 “숙의·공론화 과정은 분야별로 정책특성에 맞게 ‘숙의예산시민회’를 구성해 진행한다”고 밝혔다.

    숙의예산시민회(이하 시민회)는 서울시 각 실·본부·국과 시민이 함께 숙의해 사업의 타당성과 예산의 증감 내역 등을 심의‧조정한다. 시민회는 13개 분야와 관련한 활동을 한 시민 50%와 대표성 확보를 위해 예산 기본교육을 이수한 일반시민 50% 비율로 구성된다. 정확한 구성원 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문제는 예산 기본교육을 이수한 일반시민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예산학교에서 하루에 3시간씩 이틀간, 총 6시간의 교육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는다. 이렇게 6시간 교육을 받은 일반시민이 시민회에 참가해 수천억원의 예산 편성에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저조한 시민 참여율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해의 경우 숙의·공론·투표까지 약 13만 명이 참여했는데, 이는 서울시 전체 인구의 1.3%가량에 그치는 수치다. 올해 17만 명, 내년 20만 명도 각각 1.7%와 2%로 변동폭이 미미하다.

    전문가들 “시민숙의예산제, 전문성·참여성 부족”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시민숙의예산제에 서울시민들의 전문성과 참여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과 시민들에게 예산을 편성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예산 편성에서 자신의 이익관계와 관련된 시민이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예산 6000억원, 1조원의 편성 권한을 시민에게 주는 것은 상식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최소한 예산이 사용되기 전 예비타당성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편성된 다음 사후 검토 등의 프로세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대학의 한 행정학과 교수는 “사업 하나에 적어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단위의 세금이 투입되는데, 고작 6시간 교육을 이수한 시민을 그 자리에 두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예산 사용을 두고 불만을 갖는 시민들에게 ‘여기 몇 천억원 떼어줄 테니 너희들이 가지고 놀아라’며 어르고 달래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어 “1조원 예산을 시민이 투표로 뽑은 대표자도 아니고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서울 시민 1~2%가 집행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라며 “이것은 소통이 아닌 방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