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파이스 “스페인 당국, CIA 의심”… 김혁철 관련 정보, 외교 전문 암호 노린 듯
  • ▲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현판.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현판.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달 2차 미북정상회담 며칠 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을 습격해 컴퓨터를 탈취해간 괴한의 배후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가 1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스페인 경찰·정보국 “CIA 소행 분명”

    '연합뉴스'에 따르면, 스페인 최대 일간지인 <엘파이스>는 현지 경찰과 정보국(CNI)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북한대사관을 습격한 괴한들이 CIA 관계자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스페인 정부는 북한대사관 습격사건이 단순강도사건일 가능성은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명의 괴한이 사전에 철저히 계획을 세운 듯 일사분란하게 운직이는 모습이 마치 군사조직 같았다는 게 이유다.

    <엘파이스>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 중인 스페인 경찰과 국가정보국(CNI)은 당시 북한대사관과 인근 CCTV를 분석해 괴한 10명에 대한 조사를 했고, 그 중 2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스페인 정부는 괴한 중 일부가 CIA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CIA 측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CIA는 의혹을 부인했다. 스페인 정부는 CIA의 해명을 믿지 않는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미국이 동맹국을 상대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스페인과 미국 간 외교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엘파이스>는 내다봤다.

    미국·영국·러시아 등 세계 주요 언론은 “스페인 북한대사관 습격 배후에 미 CIA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엘파이스>의 보도를 인용 보도했다. 북한대사관을 습격한 것이 CIA라고 가정했을 때 괴한들은 무엇을 훔치려 했을까.

    괴한들이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노린 것

    사건 당시 북한대사관 관계자는 스페인 경찰에 괴한들이 대사관 관계자들을 묶어둔 뒤 PC·노트북·스마트폰 등을 챙겨 달아났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물품은 PC다.

    언론들은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가 2017년 9월까지 스페인 대사였던 점에 주목해 “괴한들이 김혁철에 관한 정보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당시는 김혁철이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지 이미 16개월이 지난 시점이고, 북한이 현지 대사관에 그에 대한 민감한 정보를 계속 놔뒀을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CIA가 노릴 만한 정보라면, 김혁철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북한이 스페인을 활용해 대북제재를 회피했다는 증거나 북한의 유럽 공작망 관련 정보 등이 있을 수 있다. 또는 ‘외교전문용 암호’를 빼내려 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프리카 테러 조직 관련 정보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2001년 스페인과 수교했다. 대사관은 2013년 10월 개설했다.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은 수단도 관할한다. 김혁철은 2014년 초대 스페인 대사 겸 수단 대사를 맡았다. 북한과 수단의 관계를 고려하면 이곳에 북한과 수단 간 모종의 거래자료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 2001년 말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과도수반과 美CIA 특수활동대(SAD) 요원, 특수부대 요원들의 기념사진. ⓒ미육군 공개사진-위키피디아.
    ▲ 2001년 말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과도수반과 美CIA 특수활동대(SAD) 요원, 특수부대 요원들의 기념사진. ⓒ미육군 공개사진-위키피디아.
    수단은 25년 넘는 기간 동안 미 국무부가 지정한 테러지원국에 포함돼 있다. 수단 정부는 2018년 들어 미국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요청하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했다. 수단은 이때 북한 정부 관계자들을 모두 추방하고, 무기거래 계약도 취소했다. 그러나 중국과 관계는 여전히 긴밀한 편이다.

    괴한들이 탈취해간 PC·노트북·스마트폰에 어떤 정보가 들어있는지는 북한당국만 안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물론 대사관 관계자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 가운데 괴한의 정체를 추정하는 데 핵심적인 사항은 “한국말을 했다”는 증언과 “동양인”이라는 목격담이다.

    북한대사관 습격 괴한은 한국인? 한국계 외국인?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한국인만큼 구사하는 사람을 정보기관 요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나라는 의외로 많지 않다. 남북한을 제외하면, 미국과 중국 정도다. 이스라엘도 오래 전부터 한국어 사용자를 첩보요원으로 모집하지만, 그 규모나 활동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은 해외 첩보망을 구축할 때 주로 북한의 대남공작에 맞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때문에 스페인에서 이런 군사적 공작을 벌일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스페인은 전 세계 범죄조직이 유럽으로 마약을 반입할 때 이용하는 주요 경로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범죄조직과 공동작업을 적지 않게 하는 북한이라면 군사적 공작도 가능해 보인다.

    미국의 한반도전문가들은 대사관을 습격한 괴한들이 타고 도주한 차량이 북한대사관 명의로 등록돼 있다는 점, 북한당국이 습격 이후 “아무런 피해가 없다, 별 일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점을 들어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북한 공작원들이 김혁철의 자료를 찾아내려 불시에 대사관을 습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의 경우 현지 한국계 인구가 많다 보니 두 나라 언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정보기관 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재미교포는 250만 명가량 된다. 한인사회에서는 300만 명으로 추산한다. 한국계 미국인은 현지에서 경찰·공무원·학자·언론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언어적 문제가 크지 않아 CIA와 연방수사국(FBI)은 물론 다양한 기관에서 일한다.

    중국에는 270만 명이 넘는 한국어 구사자가 있다. 34만 명은 한국에서 건너간 사업가나 유학생 등 한국 국적자이고, 240여 만 명은 조선족이다. 조선족 중국인은 ‘중화사상’과 ‘공산주의’로 잘 무장됐으며,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에도 적지 않은 수의 조선족 중국인이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주로 북·중 국경지역에서 북한 보위부와 함께 탈북자 색출 및 강제 북송, 공동 대남공작 등을 벌인다고 알려졌지만, 스페인 현지에 파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중국이 왜 북한대사관을 습격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갑자기 미국 쪽에 붙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김혁철 대미특별대표를 비롯해 북한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이 북한의 협상전략을 알아채지 못할 경우 미국과 경쟁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